[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장석주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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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장석주 ‘3월’
  • 경상일보
  • 승인 2023.03.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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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쇄빙선같이
치욕보다 더 생생한 슬픔이
내게로 온다

슬픔이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모자가 얹어지지 않은 머리처럼
그것은 인생이 천진스럽지 못하다는 징표

영양분 가득한 저 3월의 햇빛에서는
왜 비릿한 젖 냄새가 나는가

산수유나무는 햇빛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검은 가지마다 온통 애기 젖꼭지만한 노란 꽃눈을 틔운다
3월의 햇빛 속에서
누군가 뼈만 앙상한 제 다리의 깊어진 궤양을 바라보며
살아봐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3월에 슬퍼할 겨를조차 없는 이들은
부끄러워하자
그 부끄러움을 뭉쳐
제 슬픔 하나라도 빚어낼 일이다



“지구촌에 따뜻한 삼월의 봄햇살이 넘쳐나길”

삼월이다. 봄의 초입이라, 삼월에 관한 시들은 대개 희망이나 기대, 설렘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에서도 누군가, 삼월의 햇빛 속에서 다시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하지만 이 시의 주된 정서는 슬픔이다. 시인은 왜 삼월에 슬픔을 느끼는가. 슬픔은 서럽거나 불쌍히 여겨 마음이 괴로운 상태이다. 슬픔은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연민의 감정과 상통한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냉혹하고 메마른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다.

슬픔은 순수하고 깨끗하며 강렬하다. 슬픔은 삶의 갈피에 낀, 돌처럼 굳은 마음을 녹인다. 겨울이 물러가고 얼음이 녹는 삼월에 시인이 슬픔이란 감정을 꺼낸 연유이다.

전쟁과 지진 등으로 재난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삼월에 서로 위로하고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이 봄 햇살처럼 넘쳐나기를.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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