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박라연 ‘해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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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박라연 ‘해녀의 세계’
  • 경상일보
  • 승인 2023.03.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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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어둠의 혓바닥을 확 그을 때 환해진 어둠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생포한 어둠만 생생한 물속 어둠만 들이켜는 해녀 물질할 때만 그 순간만 겨우 환해도 족하다

가마우지 날고 몸 하나 띄울 저 맑은 물살이면 족하다 수십 해의 숨비소리와 맞바꾼 쭈글쭈글한 심장을 팔아 몸에 밴 짠맛 팔아 잠재울 풍랑이면 족하다 환함을 물에 풀어 끼니의 등대 먹여 살릴 수 있다면

*해녀들의 속담



해녀의 물질과 등대, 서로를 밝히는 ‘빛’의 원천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이월 중순, 슬도에 갔다가 해녀들을 보았다.

바람이 제법 불어 바다가 거칠게 출렁거리는데도 해녀들은 묵청색 바다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봄은 어디에서 멈칫거리고 있는지, 코끝이 맵싸할 정도로 부는 바람에 물속에 든 해녀가 솟구쳐오르길 기다리기가 버거웠다. 한참 뒤 올라온 해녀를 보고 나도 안도의 ‘숨비소리’를 내본다.

저 바다는 얼마나 차가울까.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들의 속담을 떠올리며 울컥.

평생 바다에서 살았으니 뭍의 중력이 무겁다.

해녀에겐 바다가 일터이고 놀이터이고 밥상이다. 그러니 물속의 어둠이 물질할 때만 환해진다.

‘등대’는 해녀의 물질에 기대는, 또한 해녀가 마음으로 기대는 식솔들일 테고, 해녀의 물질은 그 등대의 불빛을 밝힌다. 등대의 불빛은 물질하는 바닷속을 밝힌다. 어둠, 환해진다. ‘끼니의 등대 먹여 살릴 수 있다면’이란 구절에서 다시 한번 울컥.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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