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5)]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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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95)]봄날은 간다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3.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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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매화가 지고나니 목련이 피고, 목련이 지고나니 개나리가 피었다. 조금 있으면 온 산천에 화려한 벚꽃이 피고 이어서 꽃잎들이 눈보라처럼 휘날릴 것이다. 이은상은 시 ‘개나리’에서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답장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을 차마 쓰기 어려워서’라고 썼다. 이렇게 올해 봄날도 시나브로 가고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는 2004년 계간 <시인세계>에서 저명한 시인 100명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로 뽑힌 바 있다. 1954년 발표된 이 노래는 6·25 이후 국민들의 정신적인 피폐를 위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멜로디를 빼고 가사만 읽으면 그 자체로 휼륭한 시다. 우리 민족의 한(恨)과 슬픔, 애절함, 절망 등이 마디마디에 배 있다. 여기에 멜로디라는 생명을 불어넣으면 곡조는 제 스스로 흘러가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가사 중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부분에서는 마침내 눈물이 글썽거리게 된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달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이 노래는 최백호, 장사익,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이미자 등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그러다 2001년에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가 개봉돼 다시한번 주목을 끌었다. 유지태, 이영애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 중 가장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는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영화는 겨울에 시작해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봄이 되면서 끝난다. 그리고 사랑도 끝난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봄은 희망을 상징하지만 역설적으로 슬픔을 자아낸다. 정일근 시인은 이 노래를 패러디 해 이렇게 썼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봄날은 간다/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라고.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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