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알프스가 연두색 물감으로 물들고 있다. 아직 정상부근은 겨울빛을 띠고 있지만 며칠 안 있으면 영남알프스는 온통 연두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마을에 심어져 있는 감나무에는 연한 감잎들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다. 초봄 울긋불긋 화려했던 봄 꽃에 이어 사월 연두세상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나뭇잎은 사월에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는 잎이 가장 맑다/ 연둣빛 잎 하나하나가 푸른 기쁨으로/ 흔들리고 경이로움으로 반짝인다/ 그런 나뭇잎들이 몽글몽글 돋아나며 새로워진 숲/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산은/ 어디를 옮겨놓아도 한 폭의 그림이다/(후략) ‘나뭇잎 꿈’ 일부(도종환)

연두(軟豆)는 연한 초록색을 말한다. 연두의 연(軟) 자는 ‘연약하다’는 뜻이며, 두(豆) 자는 완두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연두는 갓 나온 완두새싹의 빛깔이라고 할 수 있다. 연두는 영어로는 옐로그린(yellow-green)이라고
한다. 옐로그린은 노란빛깔을 머금은 초록 색깔이어서 유난히 햇빛에 반짝거린다. 나뭇잎은,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사월 중에서도 청명과 곡우 사이에 돋아나온 것이 가장 맑다. 지금쯤 하동과 보성의 녹차밭에는 연두색 차나무에 새순이 맑게 돋아나오고 있으리라.
물 끓이는 돌솥에선/ 솔바람 소리 들리고// 첫물차 우려내는/ 다관 수굿이 앉아// 차 한 잔/ 따르는 둘레/ 봄의 정령 환하다 ‘우전차’ 전문(예연옥)
곡우(穀雨)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다. 속담에 ‘곡우에는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고 했다. 오는 20일이 바로 곡우다. 곡우 즈음에는 ‘첫물차’라는 우전(雨前)도 맛볼 수 있다. 우전은 곡우 5일 전에 딴 찻잎을 덖어서 만든 차로, 처음 딴 찻잎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첫물차라고 한다. 차를 좋아하는 인물로는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 뒷산 ‘다산(茶山)’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차(茶)는 영어로 티(tea)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라고 읽지만 중국 남부 해안과 대만에서는 ‘테(te)’라고 발음한다. 이 차(茶)가 유럽 등지로 널리 퍼져나가면서 티(tea)로 굳어진 것이다. 연두색 새순이 소록소록 돋아나는 계절, 아무리 바빠도 곡우 전에 마시는 우전차를 빼먹는 것은 계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