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강세화 ‘냉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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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강세화 ‘냉이꽃’
  • 경상일보
  • 승인 2023.05.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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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뜨는 별을 헤아리듯이
오월 해 질 무렵 냉이꽃을 읽는다.

열린 들판에 총총히 불을 켜고
눈에 밟히는 냉이꽃을 읽는다.

멀어져 버린 인심을 묻지 않고
돋보기 너머로 콩 줍듯이 냉이꽃을 읽는다.

봄날의 사정 들추기 민망하여
몸을 낮추고 냉이꽃을 읽는다.

허기져 목말랐던 시절을 생각해서
모른 체하지 못하는 냉이꽃을 읽는다.

속내도 까닭도 모르고 피는 꽃이 아니라
올차게 눈을 치뜨는 냉이꽃을 읽는다.



봄나물 캐는 여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공감
냉이꽃이 별을 닮았음을 시를 읽고 알았다. 별이라도 초저녁 별이니 이른 봄에 부지런히 꽃대를 올리는 냉이가 생각날 법하다. 냉이꽃은 십자화과로 하얗고 작은 십자 모양의 꽃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꽃 하나에 별 하나라면 꽃대 끝의 숭어리는 별무리 쯤 되겠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그런데 시인은 냉이꽃을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라고 하였다. 읽는 것은 보는 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이다. 거기에는 골똘한 사유와 폭넓은 인식이 수반된다. 더구나 ‘총총히 불을 켜고’ ‘몸을 낮추고’ 읽는다니 이 얼마나 냉이꽃에 더 열심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인가.

냉이는 뿌리와 잎이 향긋하고 달큰해서 국으로도 무침으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허기져 목말랐던 시절’의 훌륭한 구황식물이었다. 예전엔 봄 들판에 냉이, 쑥, 달래를 캐는 여인들이 점점이 허옇게 엎드려 있었으니, 냉이꽃은 바로 이들에 대한 은유이고, 냉이꽃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의 고단한 삶을 ‘모른 체 하지 못하’고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말이다. 허기진 봄을 살아내는 것은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 ‘올차게 눈을 치뜨는’ 일이니까.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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