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03)]죽순(竹筍), 그 생명의 용솟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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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03)]죽순(竹筍), 그 생명의 용솟음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05.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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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요즘 태화강 대숲에는 죽순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만물이 왕성하게 자라나 가득 찬다’는 뜻의 소만(小滿·21일) 무렵이면 죽순은 사람 키를 훨씬 넘는다.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에는 현재 왕대, 맹종죽, 오죽, 구갑죽 등 다양한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죽순(竹筍)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생장 속도를 말해준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한 달을 초순·중순·하순으로 열흘씩 묶어 ‘순(旬)’으로 표시했는데, 대나무 순은 열흘이 지나면 딱딱해져 먹을 수가 없었다. ‘筍(순)’이라는 한자는 이러한 연유에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죽순은 땅심을 한껏 빨아올리며 40여일이면 완전히 생장한다. 죽순은 ‘투모초(妬母草)’라고도 하는데 엄마 대나무의 키를 시샘(妬)하는 풀이라는 뜻이다.

죽순밭에는/ 흥건히 고이는 울음이 흐른다/ 죽순밭에는/ 낭자히 고이는 달빛이 흐른다.// 무엇인가 뿜고 싶은 가슴들이/ 무엇인가 뽑아올리고 싶은 욕망들이/ 쑥쑥 솟아오른다/ 도란도란 속삭인다.// 왕대 참대 곧은 줄기/ 다투어 뽑아올리는 대나무밭/ 나도 한 그루 대나무 되어 서면/ 내 가슴 속에서/ 빠드득 빠드득 뽑아오르는 소리/ 뾰족뾰족 솟아오르는 울음 소리…(후략) ‘죽순밭에서’ 일부(문병란)

▲ 죽순
▲ 죽순

죽순 중에서도 맹종죽(孟宗竹)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이른바 ‘맹종읍죽(孟宗泣竹)’ 설화다. 맹종은 중국 삼국시대 사람인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던 어머니가 겨울 어느날 죽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맹종은 눈 쌓인 대밭으로 나갔지만 죽순이 있을 리가 없었다. 눈밭에 주저 앉아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떨구고 있는데 눈물자국에서 죽순이 돋았다. 중국 효자 24명을 수록한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나오는 이야기다. 속담에 ‘맹종죽 죽순 맛을 한번 보면 상장(喪杖)도 부수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상장은 초상이 났을 때 상주가 짚는 대나무 지팡이를 말한다.

푸른 대숲 바람 담아오려/ 카메라 가방 메고 갔더니/ 대숲이 누렇다// 늘 푸른 숲인 줄만 알았는데,// 소만小滿 무렵이면/ 죽순에게 한껏 젖을 물리느라/ 대숲이 누렇게 변한단다// 새끼를 위하여/ 누렇게 부황 든 어미의 얼굴이다

‘소만(小滿) 무렵’ 전문(김인호)

소만 무렵이면 대나무 숲이 누렇게 변한다. 새로 돋아나는 죽순에게 모든 영양분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대나무의 가을’, 이름하여 ‘죽추(竹秋)’라고 한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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