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양애경 ‘열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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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의 월요시담(詩談)]양애경 ‘열흘’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3.05.22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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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
5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아침
간밤에 곤했는지
새들은 아직 지저귀지 않고
푸른 날빛이 유리창 뒤에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오늘 하루는
열흘처럼 지내야지
생명이 1년 남은 사람처럼
옷장에서 여름옷 꺼내고
봄옷 모두 개어 넣은 다음
출근하여 열흘 치 일을 하고
열흘 치 미소를 짓고
그가 한 개만 사랑해준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 사랑을
그의 하늘에 열 개의 태양으로 쏘아 올리는 거야

그리고 해가 지면
묵묵히 돌아와 누워야지
5월의 한가운데에 놓인
열흘간 지속되는 야생의 밤에




“하루를 열흘처럼, 온 힘을 다해 살아가길”

5월이 얼마나 아름다운 달인지, 피천득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했다. 5월의 한가운데 태화강 둔치에 가보니 꽃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꽃이 절정이었다. 지나는 길 비탈에는 조팝과 낭아초가 한창이고, 넝쿨장미는 담장을 붉게 물들였다. 활짝 펼쳐진 가로수 잎은 햇살 아래 반짝거린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시인은 5월의 이 시간에 ‘열흘’이란 말미를 준다. 열은 단순히 10을 뜻하는 숫자가 아니다. 백, 천, 만이 ‘크다’를 의미하듯, 열 역시 가장 큰 숫자, 열흘은 가장 많은 날이다. 그러니 하루를 열흘처럼 산다는 건 아깝게 지나가는 계절의 절정처럼 온 힘을 다해 살아가라는 이야기다. 그는 한 개의 사랑을 주지만 자신은 사랑을 ‘그의 하늘에 열 개의 태양으로 쏘아 올리’겠다는 것도 마찬가지.

열 배 사랑한 사람은 열 배 더 아프겠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5월처럼, 5월의 한가운데처럼. 그리고 그 사랑의 기억으로 ‘열흘간 지속되는 야생의 밤’, 기나긴 두렵고 쓸쓸한 밤을 견딜 수 있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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