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사태, 당위성 아닌 절차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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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사태, 당위성 아닌 절차의 문제
  • 이춘봉
  • 승인 2023.06.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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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울산시가 ‘위대한 기업인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기업인 흉상 조형물 건립으로 울산이 연일 들썩거리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재벌 총수를 우상화한다는 취지의 반대 기자회견이 잇따랐고, 시의회 점거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민선 8기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념사업 발표 직후 논란이 고조될 조짐을 보이자 김두겸 울산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단일 사안으로는 이례적으로 40분 이상 시간을 할애하며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핵심 관계자만 알 수 있다는 정보를 거론하며 당위성을 역설했다. 기업의 탈울산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창업주의 조형물을 건립해 울산을 대기업의 선산으로 만들고 울산에 대한 투자를 이끌겠다는 취지였다.

울산의 성장 배경에 묵묵히 일해 온 노동자들의 땀방울 외에, 도전과 의지로 성공을 이끌어낸 기업가 정신이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노동자 도시로서 노동자들을 기념하는 충분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는 반면, 울산의 오늘을 있게 한 또 다른 축인 기업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취지는 좋지만 절차에 대한 지적이 일면서 사태는 점차 꼬였다. 사전 여론 수렴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조례를 상정하기도 전에 이미 관련 예산까지 편성했는데, 이렇다 보니 수순을 뒤집어가며 사업을 추진할 정도로 사안이 급박했느냐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산업도시 울산을 빛낸 기업인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기념한다는 사업의 취지는 기업 투자 유치와 연계하면 충분히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청회나 설명회 같은 여론 수렴 없이 서둘러 진행하다 보니 절차의 하자가 두드러졌고, 반대 목소리가 더 설득력을 얻는 형국이 돼 버렸다.

이번 사업은 시의회 심의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며 조금씩 제동이 걸렸다. 부지 매입을 위한 공유재산 심의는 통과했지만 산업건설위원회의 조례안 심의에서 시민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던 부분 등이 일부 지적되며 사업의 범위가 기업인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 등 분야에서 지역 발전에 공헌한 인물까지 포함하는 내용으로 수정·통과됐다.

이후 산건위 추경 예산안 심사에서는 위원회의 구성, 대상자 선정, 사업지 매입, 공론화 등의 절차와 시기를 고려해 부지 매입비인 50억원만 남겨두고 조형물 제작비 200억원은 삭감 처리됐다. 아직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극적인 반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번 사업은 울산에 대한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도 있지만, 울산의 이미지를 좀먹는 흉물이 될 수도 있다. 찬반양론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했었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극심한 반발이 일었고 결국 시가 기대하던 결과는 얻지 못했다.

김두겸 시장의 장점은 남구청장 재임 시절부터 보여주던 뚝심 있는 운영이다. 이 모습에 매료돼 김 시장의 손을 들어준 시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차가 뒷받침되지 않은 불도저식 운영은 이번처럼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때로는 둘러 가는 길이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춘봉 사회부 부장대우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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