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시절 6·25 즈음에 불렀던 노래 가사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온 날을. (이하 중략)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였다. 요즈음도 학교에서 배우는 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노래를 배워 부르면서 애국심을 다졌던 기억이 있다. 리얼한 전투 장면이 나오는 영화 ‘액터 오브 밸러’(용기있는 행동)는 미국의 네이비씰이라는 최정예 부대가 멕시코 테러리스트에 납치된 CIA요원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영화 마지막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국가를 위해 희생하며 테러와 폭압을 위해 싸운 이들에게 바친다’는 클로징 멘트가 나온다. 부대장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막아내며 희생하면서 부대원들을 구하는 장면은 애국심과 희생 정신의 본보기로 배웠던 수류탄을 안고 산화한 고 강재구 소령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언제부터인가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말하면 고리타분하고 수구적이라고 보는 일부 분위기가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의 위협이 엄연함에도 평화를 앞세우고,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음에도 북한의 위협을 가정한 군사훈련에 대해서 ‘전쟁이라도 하자는 말인가’라고 호도한다. 6·25는 사변이라 부르든 전쟁이라 하든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남침이다. 어제와 같은 6·25 일요일 새벽에! 전쟁을 유발하거나 준비한 측에서 보름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릴 수 없음에도 ‘거짓말도 자꾸 하면 진실이 된다’는 선동술을 받드는 교조주의자들은 남측유발설이나 조국해방전쟁이라 주장한다. 8·15가 다가오면 일제 압제에서 민족을 해방시킨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하는 소리도 나오는데 한미 군사훈련을 전쟁 준비라고 하는 주장과 비슷하다.
남북 분단과 6·25 전쟁 이후 남쪽에서 먼저 북한을 공격한 일은 없지만 북한의 테러는 무수히 많다. 푸에블로호 납치, 판문점 미군 도끼 살해,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문세광의 박 대통령 저격 시도,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금강산 관광객과 서해 공무원 살해 등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최근 핵과 미사일에 이어 핵 선제 공격 등 핵사용 5대 조건 발표로 북한 핵에는 흥정할 수 없는 불퇴의 선이 그어졌다.
20여년전 톱스타 장동건과 원빈이 주인공 형제로 나온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가 있었다. 동생이 6·25 전쟁에 징집되자 형이 함께 입대해 동생을 귀가시키려고 전공을 세우려다 악마적 인간으로 변해간다는 형제애를 담은 반전영화였다. 미국 영화 ‘라이언 일병구하기’를 닮았다고 하지만 라이언 영화는 라이언의 다른 형제 세명이 모두 2차 대전에서 전사하자 미군 지휘부에서 라이언마저 전사한다면 가족에게 너무 큰 고통이기에 라이언을 찾아 귀향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가 라이언을 데려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가족애와 휴머니즘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보여주는 영화로 태극기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고 느꼈다. 태극기 영화에서 국군이 동생을 징집하고자 버스에서 폭력으로 끌어 내리고 형이 대드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폭력적 강제징집으로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의도인가 의심되어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원인과 과정, 결과 및 이후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면서 교훈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김일성의 야욕에서 비롯돼 동족에게 들이댄 총부리로 인해 산하에 많은 피가 뿌려졌고 정전 이후 계속해 테러로서 평화를 깨면서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이어져 온 역사는 생생한 현실이다. 국가의 안위에 대한 치명적 위협에 대비하는 일은 공동체의 존립과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전쟁이나 테러에 대한 대비는 애국심으로 무장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된다. 전쟁이나 테러에 대항해 공동체를 지키는 희생은 아무리 추앙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애국의 강조는 결코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다.
박기준 변호사 제55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