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서안에는 당(唐)나라 때의 서시(西市) 터를 발굴해 기념지로 꾸며 놓은 곳이 있다. 박물관과 각국의 전시관이 근처에 있다. 실크로드와 차마고도로 연결되는 세상의 중심지, 그래서 중심의 나라, 중국(中國)이었다. 서시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국제무역의 장소였다.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 서역에서 온 상인들의 카라반 행렬을 볼 수 있는 곳이자 동으로 멀리 신라의 경주에서도 왕래했다하니 온 세상에서 찾는 서안은 로마 같은 대도시였다. 서시는 외제품을 파는 시장으로 아마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향신료나 귀중한 장신구, 염료, 비단 같은 것이었을 테고 3가지 색을 써서 만든 도자기, 당삼채(唐三彩)도 그때 인기품목이었다. 21세기에 중국이 다시 그렇게 재현해 보려는 것이 바로 일대일로인 것이다.
한동안 중국은 한국에서 부품(중간재)을 들여와 조립해서 완제품을 팔았다. 그러다가 스스로 중간재를 만들고 완제품을 만들어 팔게 되었다. 기술이 축적된 것이다. 자동차와 전기자동차, 다른 기계들로 재미를 보았다. 한국과 공생하다가 경쟁을 하는데 인건비가 싸니 유리하다. 공장을 늘였다. 그런데 바이러스로 개점휴업을 했고 은행 빚은 가득 쌓였다. 인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맨다. 투기로 한 몫 보려던 사람들이 몇 채씩 떠안은 집은 고통이다. 수요가 없으니 부동산업이 폭탄이다. 청년층의 실업률이 20.8%란다. 성능 좋은 반도체로 만드는 첨단 전자제품은 만들면 돈이 되지만 그런 반도체가 없어서 못 만든다. 한국도 중국도 서로를 버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를 위해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5% 안팎’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제 금리는 높고 외국인 기업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미국도 중국도 당장은 서로를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에 없는 희토류가 있고 중국에 없는 기술과 시장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위험분산인 디리스킹을 택하는 미국은 그 사이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특정산품을 맞교환하며 새로 개발을 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다. 큰소리는 치지만 중국이 급하긴 급한가 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감금되다시피 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던 인민들이 그래도 호환(虎患)같은 큰 병인가 싶어 참았다. 그런데 이제 더는 아닐 수도 있다. 일자리가 없고 먹을 것이 떨어져 배고프면 말이다.
한국무역협회의 무역통계를 보면 지난해 수출은 6836억달러에 수입은 7314억달러로 적자가 478억달러다. 수출 규모로 보면 중국이 1558억달러로 1위, 미국이 1098억달러로 2위이며 200억달러가 넘는 나라는 베트남,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순이다. 지난해 대중국 무역수지는 12억달러 흑자였으나 올해 2월까지 두 달 동안 5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가 잘하는 방산무기나 조선, 자동차, 정밀기계를 중국이 사 줄 리가 없고 오히려 경쟁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 희토류가 있으니 배터리를 개발했고 전기자동차 시장도 선점했다. 이제 중국은 전기차 모터나 휴대폰 충전에 주로 쓰는 전력반도체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는 산화갈륨으로 만든다는데 실리콘 반도체와 비교해 저렴하면서도 더 높은 전압, 온도, 주파수에서 작동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적도가 낮지만 자체적으로 만든 반도체와 이 전력 반도체로 어느 정도 버텨나갈 것이다.
G2의 게임에서 미국은 중국이 추월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중국의 대체시장으로 아시아 국가들을 키우려고 ‘알타시아(Altasia)’를 지원한다. 알타시아는 중국과 북한을 뺀 아시아권의 나라, 14개국이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화웨이 등을 제재하자 중국은 5월21일, 미국의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제재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또 화웨이와 알리바바(전자상거래)의 추가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인 모양이다. 미국은 반도체의 빈자리를 한국이 메꾸지 말라 했고 중국은 지는 쪽에 베팅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막말을 했다. 점입가경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선린은 못될지언정 오가는 말이 이리 험해서야 되겠는가?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개(狗不露齒)가 문다. 절제와 지혜가 필요하다. 한 때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돌았다. 맞는 말이다. 힘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소년 다윗의 힘, 지혜 말이다.
조기조 경남대 명예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