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42)]죽음에 비친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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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42)]죽음에 비친 삶의 모습
  • 경상일보
  • 승인 2023.07.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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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한 사람의 죽음이 가족의 슬픔을 넘어서 사회의 아픔으로 승화되고 있다. 얼마 전 돌연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울아산병원 고 주석중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자취다. 그날도 주 교수는 새벽까지 수술을 집도했다고 한다. 짧은 휴식 후에 집에서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 교수의 삶은 오롯이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집중되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거주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행사를 자제할 정도로 철저하게 의사로서의 소명을 실천하며 살았다.

동료 교수들은 주 교수의 삶과 죽음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소천했다.” 많은 환자들이 생명을 구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뛰어난 수술 능력을 보유한 흉부외과 의사였다.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주 교수의 삶과 죽음은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소식을 듣는 이들도 숙연하게 한다.

우리의 삶은 가족들의 안녕과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신념과 행동도 개인적 욕망을 성취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타인을 위한 희생은 현실 생활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관념적인 가치로 평가될 뿐이다. 헌신이나 희생과 같은 윤리는 각박한 현대인의 삶과 어울리지 않는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교적 수행자와 같은 삶을 살다 간 고 주석중 교수의 생애는 개인적인 이익 추구에 몰두하는 우리에게 묵직한 경종을 울린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노년이 되면 삶을 돌아보고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삶은 아니지만 생의 끝자락이 가족이나 사회에 짐이 되는 모습은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경영하고 감당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늠하고 고민한다. 사회 속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발견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완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염려해야 한다. 생명체의 삶은 때가 되면 쇠약해지고 사라지는 것이 순리이다. 한 생애의 의미를 젊은 시기의 성취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년이 삶에 부과된 역할을 완수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에게 가능한 시간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도 이 시기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심신이 쇠약해 가는 모습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그 과정이 항상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몸과 마음이 변해가는 일이 평화롭지 못하고 소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정신이 쇠약해지는 과정은 자신의 삶을 황폐화하고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도 두려워하는 자연의 운행 모습이다.

중국의 고전 서경(書經)에서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복중의 하나로 고종명(考終命)을 들고 있다. 수명을 다하여 살다가 평온하게 죽는 것을 말한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족들의 애도 속에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복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의 마지막 시간이 평안한 삶이나 평온한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점점 길어지는 것이 현대 사회가 이룬 성과이자 숙제이다. 죽음이 삶의 한 모습이듯이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도 삶의 한 부분이다. 삶의 영역에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두렵지만 엄연한 자연의 질서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이러한 죽음의 모습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할 때 가장 절실한 힘을 얻는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순간마다 전력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진리를 온몸으로 실천하고 떠난 사람의 생애를 기리면서 다시 한번 남은 시간의 의미를 되새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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