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 인상주의, 사실주의 등 유명한 많은 미술 양식들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박한 사람들이 이루어낸 미술계의 양식 소박파(Naive art)는 낯선 이름일 것이다. ‘소박파’는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그림에 입문하여 사실적이고 고전적 구상을 그린 그림의 양식이다. 같은 시대의 미술 유파들과는 무관하게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생업으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취미로 붓을 잡고 화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일요화가, 문외화가로 불리기도 했으며, 미술계의 주류는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그림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소박파의 대표적인 화가는 ‘앙리루소’ ‘세라핀루이’ ‘루이비뱅’ ‘앙드레보샹’ ‘카미유봉부아’, 미국에는 ‘그랜마 모지스’가 있다. 이들의 직업은 참 흥미롭다. 앙리루소(1844-1910년)는 일요화가로 주말마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40세 후반의 세관원이었고, 세라핀루이(1864-1942년)는 영화로 소개될 정도로 애절한 하녀의 삶을 살았다. 그랜마모지스(1860-1961년)는 농삿일을 하는 5남매의 엄마였고, 75세에 사망할 때까지 1600점의 그림을 남겼다. 루이비뱅(1861-1936년)은 62세까지 집배원, 앙드레보샹(1873-1958년)은 40대까지 측량기사였다. 이들의 작품들이 많은 컬렉터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작가 이전의 40여 년의 인생 경험이 있었기에 표현 기술의 강박에서 벗어나 작품에 편안함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에는 TV와 SNS를 통해 ‘부캐’ 라는 단어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도 정말 많이 보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던 활기와 열정이 점점 흐려져 가는 것이 느껴지고 젊은 시절의 그 화려한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드는 듯한 기분이지만 그 흐릿해진 활기와 열정 속에서 ‘시간의 여유’ 라는 또 다른 선물을 얻게 된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의 여유는 가족과 함께할 풍요로운 시간을 선물하고, 취미를 즐기는 충분한 기회를 주며, 친구들과 소통하며 정을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준다. 그 시간의 여유 속에서 자신만의 취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취미생활 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은 그림 그리기, 글쓰기, 사진 찍기, 음악 연주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서 존재한다. 어떤 장르든지 우리의 감정과 감성을 표현하는 강력한 매개체로 손색이 없다. 인생을 경험하며 성장하면서 감성은 더욱 섬세하고 풍부해지며 이런 감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예술은 공감과 이해를 통해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통해 나눠지는 우리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그 공감은 서로에게 새로운 힘을 준다. 또한, 예술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20대를 지나 30대, 40대가 되면서 누구나 체력적인 한계와 건강 문제 등을 생각하게 된다. 이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도 예술을 통해 해결되고 치유가 된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를 담아놓은 예술은 단순히 마음의 편안함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기록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자기 경험을 작품으로 기록하고, 이를 통해 자녀, 혹은 후대에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유산으로 남길 수 있다.
예술은 여유로운 시간을 즐겁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지만, 새로운 ‘부캐’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겠다. 처음부터 멋진 작품이 나올 수는 없기에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가졌던 그림 그리기, 글쓰기, 사진찍기, 음악 연주 등 여러 장르 중에서 하나를 골라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보자. 목표를 향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나를 찾고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나’는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정영진 갤러리 크로크리아 대표 본보 제21기 독자권익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