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수칼럼]이제라도 이탈(離脫)이 아닌 탈북(脫北)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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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찬수칼럼]이제라도 이탈(離脫)이 아닌 탈북(脫北)으로
  • 서찬수 기자
  • 승인 2023.07.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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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찬수 편집국장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경로를 재검색합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자동차를 운전할 때 지정해주는 도로를 벗어나면 듣게 되는 경고 말이다. 이 때 ‘이탈’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는 지정된 길을 벗어났다는 의미고, 재검색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찾아주겠다는 뜻이다.

월남인(越南人), 귀순용사, 탈북자, 탈북민, 새터민, 북한이탈주민(北韓離脫住民, North Korean defectors) 등등. 우리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통상 지칭하는 말들이다. 월남과 귀순용사는 1953년 휴전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냉전시대에 주로 사용됐다. 당시에는 중국 등 다른 나라를 통해 국내로 올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는 상태에서 휴전선을 넘어 왔기에 그렇게 했을 것 같다.

통일부 기준으로 ‘새터민’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당시 밝은 어감의 단어를 골랐다고 하지만 정작 일부 탈북민들은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이유로 초반 반발하기도 했다. 결국 2008년부터는 법률 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사정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안정과 발전을 이룬 반면 북한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피폐해진 1990년대에는 북한주민들이 중국 등지로 탈출해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때부터 이들을 탈북민 또는 탈북자로 불렀다. 국내로 들어와 정착하던 다른 나라로 가던 모두 탈북자로 불렀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북한 경제가 붕괴된 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압록강 인근에서 중국으로 넘어가 살던 북한 주민들이 2000년대부터 중국의 단속을 피해 대한민국으로 대거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탈북민이라 불려지게 됐다. 그리고 탈북이 통용되던 시기도 이 때이다. 중국에 살던 북한주민들이 국내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국공안의 단속에 걸리면 북송됐기 때문이다. 북송에 따른 징벌이 두려웠던 셈이다.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 대신 제3국을 택하기도 했다.

북한이탈주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953년 휴전 이후 북한 지역에서 이탈하여 대한민국에 정착한 사람을 가리킨다.

대한민국이 아닌 제3국으로 망명한 경우에는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반면 탈북자는 제3국으로 망명한 경우에도 사용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국내용인 셈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더욱 구체적이다.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해당 법에서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 지역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탈이 주는 의미는 앞서 서두에서 봤듯이 대단히 부정적이다. 주류에서 자의든 타의든 벗어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탈북민들이 주류인 북한을 벗어난 이단자의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다.

‘이탈(離脫)’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범위나 대열 따위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떨어져 나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예로 ‘근무지 이탈’로 표현하고 있다. 대단히 부정적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 대한민국을 찾은 탈북민에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탈은 아니다. 이 때만큼은 서두에 표현한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경로를 재검색합니다”가 아니라 “경로에 정상적으로 진입했습니다. 축하합니다”가 맞는 것 같다.

2022년 기준으로 국내 탈북민은 3만3000여명이라고 통일부가 밝히고 있다. 한해 최대 3000명을 넘던 탈북민 수가 점차 줄어들다 코로나의 영향에다 북한과 중국의 감시강화로 지난 2021년 63명 등 100명 이하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들이 주류에서 벗어난 북한이탈주민이 아닌 자유를 찾아 제3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정착하는 탈북민으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sgija@ksilbo.co.kr

서찬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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