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조력존엄사를 합법화하자는 법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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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조력존엄사를 합법화하자는 법안에 대하여
  • 경상일보
  • 승인 2023.07.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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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몇 년 전에 공중파 방송을 통해 호주의 저명한 생태학자인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가족들과 함께 스위스를 방문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과정을 보았다. 104세에 이른 노학자는 거동이 불편하였지만 집에서 자신의 끼니를 챙겨먹을 정도의 기력은 되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90세를 넘긴 후부터는 인생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고 하면서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고, 앞으로 50~60년 후에는 모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사는 가족들과 함께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허용된 스위스를 방문해 의사의 도움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약물 투입의 최종 장치는 본인이 조작하게 되어 있다고 했고, 죽음의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고 했다. 박사는 마지막 순간에 베토벤 교항곡 9번 합창을 들으면서 영면에 들었다고 하는데, 필자는 영상을 보는 내내 ‘아무리 노령이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존엄사는 임종을 앞둔 사람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인 모습이 있을 수 있고,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이 중 후자를 조력존엄사라고 부른다. 조력존엄사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약물을 투입하기는 하지만, 약물투입의 최종 장치는 본인이 스스로 조작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진에 의해 약물이 투입되는 안락사와는 다르다. 안락사는 엄격하게 말하면 타살의 의미가 있다. 구달 박사의 이 영상이 나올 때만 해도 약물 투입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경우를 안락사라고 불렀는데, 요즘에는 두 가지를 분리해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2월3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뜻에 따라서 연명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소극적인 존엄사가 인정된 것이다. 환자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 혹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해 환자의 연명의료중단의사가 확인된 경우이거나 환자의 의사가 확인되지는 않지만 전가족이 동의해 환자에게 연명의료중단의사가 있었다고 확인되는 경우에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지사 등에 가서 작성을 해 놓으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제공하게 된다.

그런데 이같은 소극적인 존엄사 말고 의사의 처방을 통한 적극적인 조력존엄사를 인정하자는 법안이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됐다. 그리고 법안발의 1년을 맞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지난 12일 조력존엄사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주로 생을 어떻게 마칠 것인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했다.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며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호스피스 확대, 의료보험 제도 개선을 통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조력존엄사가 오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양쪽의 의사가 일치했다.

7월초에 있었던 한국리서치의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82%가 조력존엄사를 찬성했고, 18%만 반대했다. 지난 12일 KBS가 국회의원 전원에게 물어보았을 때에는 답변을 한 100명 중 87명이 찬성했고, 13명이 반대했다. 필자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고, 이러다가 덜컥 입법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베네룩스 3국, 스위스, 케나다, 미국의 몇 개 주 등에서만 조력존엄사를 허용하고 있고, 선진국의 대부분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약물을 투입해 인간생명을 단축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생각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가 들어 있고 인간의 존엄성에 맞지도 않는다. 필자는 조력존엄사법의 입법에 반대한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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