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한 할머니가 얼굴 가득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하게 되는 어느 미래를 다룬 일본 영화, ‘플랜 75’의 한 장면이다. 바닥난 연금재정을 두고 불붙은 세대 간 갈등이 이제 더는 손쓸 수 없는 사회문제로 부상하자 정부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들고나온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게 정책의 골자였다. 저 장면은 정부가 제작한 공익광고였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경제적 효용 가치가 다한 노인들을 폐기처분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이럴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강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저 잔혹한 사회적 살인 정책이 실행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노령화 사회는 닥칠 것이고 젊은 세대에 기대어 살아야 할 노인은 암담하다. 나라의 재정이 바닥나고 최저 생계도 되지 못하는 노인은 죽음보다 더 힘든 삶에 지쳐 ‘지금 내가 죽을 때’라고 스스로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자신이 죽을 시기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거의 극단적인 경우에 처하게 될 때일 것이다. 미국의 브라이언(65)은 아내 에이미와 함께 스위스 여행을 떠났다. 맛난 것을 먹고 멋있는 풍경 앞에서 서로 포옹하며 보내는 것은 평소 휴가와 비슷했다. 두 사람의 이 시간이 절실하게 소중한 이유는 마지막 여행이기에, 이별 여행이기에, 그가 스위스에 ‘조력 존엄사’를 하러 가기에 그렇다. 그는 뇌 MRI 촬영에서 ‘조기 알츠하이머’치매로 확진이 되었다. 청천벽력같은 사실에 두 사람은 비탄에 빠지고 완치는 어렵더라도 진행을 더디게 하기 위한 모든 치료를 알아보았다. 에이미는 울음을 감추고 격려했다. 절망하고 방황하던 그는 ‘아직 나 자신으로 남아있을 때 이 삶을 끝내고 싶고, 이 끔찍한 질병의 구렁텅이에 가족을 빠뜨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남편의 진심 어린 설득과 수많은 대화 후에 아내는 그를 따르기로 한다. 두 사람의 마지막 여행에 관해 쓴 책 <사랑을 담아>에서 에이미는,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사랑 넘치고 재밌고 엉뚱하며 사탕을 잘 나눠주는 만만한 ‘하부지’로 기억하는 것이 브라이언과 내게는 몹시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를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하부지’의 생이 다하는 날 슬픔과 안도를 동시에 느낄 테지만, 이 방식을 택하면 그저 슬퍼하기만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일본의 ‘플랜 75’의 노인은 사회적 타살이지만 브라이언은 자신과 가족의 존엄을 위한 자살이다. 치매 노인을 치료해 왔다. 몸이 허물어지는 것보다 정신이 조각나며 황폐해지는 것을 보며 절망할 때가 많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삶의 앨범이 하얗게 퇴색하다가 괴팍해지며 의심하고 어린아이보다 못한 인성으로 퇴행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식이 없고 영혼이 빠져나가고 젖은 종이 같은 육신이 남는 모습으로는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에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치매뿐 아니라 고통만 남는 불치병에 이른 이들을 위해 ‘조력 존엄사’ 법 제정이 추진되고 ‘깊은 이해로 사려 깊게 돕는’ 의사나 배우자, 단체가 늘어나며 책으로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다운 모습’이 사라진 상태도 인간이고, 살 권리가 있으며, 느리고 뒤틀려졌지만 역시 삶이라는 말도 옳다. 혼자 살 수 없어 조력자의 도움으로 이어지는 삶이라고 사라져야 할 존재는 아니다. 의식이 있을 때 제 삶을 끝장내지 않고 조력자의 손길에 맡기는 것도 인간다운 것이다. 만약에 삶의 그러한 끝이 싫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존엄하게 마치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죽음에 관해 공부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떠나야 할 이가 절망하는 남은 이들을 달래는 것은 슬프지만 성숙한 완성이기도 하지 않는가? 나에게 올 수 있는 이런 경우를 생각하다 밖을 보니, 장마 사이의 푸른 하늘이 보이며 오늘 하루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