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에 내달부터 명망있는 소아청소년과 신규 의료진들이 충원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또 병원입장에서도 이런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마냥 기뻐하기 힘든 것은 이 만남이 울산의 대형 모자병원이 휴업을 결정하게 되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던 병원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병원이 하던 역할을 조금이라도 이어가길 바라며 소아청소년과 증원이라는 결정을 했지만 이런 부분들 때문에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몇 년 전부터 회자되는 ‘필수의료’라는 단어가 있다. 사실 어느 진료과도 본인의 과는 필수의료가 아니라고 하진 않기에 유연성이 큰 단어이긴 하다. 근데 그중 유독 고충을 겪고 있는 과가 몇 개 있고 최근 두드러지는 게 산부인과와 소아과다. 해당분야는 현재 서울 대형병원들에도 전공의 충원이 전혀 안되고 있고 민원에 못 견딘 의원이 폐업을 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는 등 비명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의사단체에서는 정부의 책임있는 대책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 의사와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고 병의원들은 일종의 자영업자들인데 정부의 대처에 의존하는 것이 맞느냐는 반대의견도 있으며, 원인을 따진다면 저출산이 가장 큰 원인인데 그런 큰 흐름을 어떤 특정 정권이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회의적 시각 역시 일부 있다. 그리고 이 의견들이 중간점을 찾기보단 극과극으로 부각되며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딱 정해진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정확한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다 보는 느낌이다. 열심히 풀어보려고 A라는 답을 제시하는 쪽과 그게 아니라며 B를 제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건 말이 안되는 문제라며 그냥 외면해버리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층에서 나온 의견들이 다 타당하다 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의료형태의 기본골격을 정하는 가장 큰 주체가 관이기에 그 협조를 배제할 순 없다고 본다. 어느정도는 정부에서 협의 및 지원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런 대화가 진지하게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사실 소아과와 산부인과 뿐만이 아니다. 이미 중한 급성기 수술을 하는 많은 진료분야에서도 의료진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지방으로 갈수록 더하고 앞으로 점점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전 정부는 개별병원이 아닌 한 지역 및 권역을 중심으로 묶어 심뇌혈관 질환 발생시 지역차원에서 대응하는 네트워크 구상과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근데 좋은 취지를 넘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만큼 갖춰진 곳이 몇군데 되지 않았다. 이런 당장의 현황도 그렇지만, 이 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의사가 계속 줄어든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요 몇 년간의 일 때문이 아니라 이미 장기간 쌓여온 원인들의 결과물이기에(의료진을 육성하려면 기본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근 몇 년 사이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은 ‘정말 무언가를 해야’하는 시기에 다다른 듯 하다. 갈등관계만 지속되는 차원에서 그칠 일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3년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감명깊었던 부분은 그동안 이뤄졌던 민관협력의 모습이었다. 급증하는 환자로 우리나라 의료가 전체적으로 붕괴될 위기상황이라는 말들이 돌았고 부담스러웠지만 그럴 때 민간병원들과 관공서 및 정부의 협력을 통한 대처는 정말 빛을 발했다. 지금은 그 때와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의료위기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체감은 덜 될 지언정 더 힘든 상황일 수도 있다. 그 때 해냈던 협력관계와 문제해결 능력이 어디 가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금 보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차 해결을 위한 진지한 협의를 시작해줬으면 한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