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 울산에서 살았다. 대구에서 사진을 공부했던 대학시절을 빼더라도 거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느새 울산은 나의 일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사는 진짜 고향이 되었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울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얼마 전 두 번의 경험이 울산에서의 문화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지난 6월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전시 관람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했다. 호퍼의 명성답게 인파에 떠밀리듯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햇빛 속의 여인’ 작품 앞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던 딸아이의 대화가 들려왔다. 작품 앞에 서자마자 앳된 아이는 엄마에게 작은 탄성을 뱉으며 말했다. “엄마, 이거 호퍼 작품 중에 내 페이보릿(favorite)이야!” 앳된 목소리의 ‘페이보릿’이라는 단어가 귀여웠지만 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말의 배경에는 그 아이는 이미 호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작품 취향까지도 가졌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고 학습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저 많은 경험치들을 울산의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두 번째는 7월9일 폐막일에 방문했던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예술 비엔날레이다. 마지막 날이라 파장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전시장 안팎으로 수많은 관람객들이 늦은 시간까지 꾸준히 유입되었다. 아마도 전국에서 몰려든 것인지 다양한 지방의 사투리가 들려왔다. 올해의 광주비엔날레는 갖가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다소 단조로운 전시라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와 별개로 마지막 날임에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은 울산의 예술인인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울산의 상황을 서울의 수준이나 광주비엔날레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 울산이 못할 것은 무엇인가 싶다. 환경과 산업, 자연과 사람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문화도시로 선정되어 정부로부터 큰 규모의 예산도 지원받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얻은 만큼 진정한 의미의 문화도시 형성을 위한 장기적인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도 예술인들은 좋은 기획과 작품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고, 주관 부처와 기관은 효율적인 행정과 능동적인 지원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까지 더해진다면 울산의 문화도시 완성을 앞당겨 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울산을 대표하는 예술가와 문화예술행사의 성장을 보기 위해 울산으로 몰려드는 날을 고대한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