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서생포왜성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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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서생포왜성이라는 이름
  • 경상일보
  • 승인 2023.08.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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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서생포왜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 있는 성곽문화재의 이름이다. 이 성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 5월3일 조선총독부가 지금의 사적에 해당하는 고적 제85호 ‘서생포성’으로 최초 지정했고,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사적’으로 이어지다가 1997년 10월30일에 지방문화재인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서생포왜성은 조선총독부가 자신들의 조상 전적지라 하여 고적으로 지정해서 보존했지만, 우리 정부는 ‘왜성’이라는 이유로 국가지정문화재에서 지방문화재로 강등시킨 셈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서생포왜성’이라는 명칭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많은 왜성이 고적으로 지정되었지만 ‘왜성’이라는 명칭을 스스로 붙이지 않고, ‘부산일본성’과 같이 ‘일본성’이라고 하거나 따로 붙이지 않았다. ‘왜성’은 해방 후에 우리가 붙인 명칭인데, 이것이 맞는 경우도 있고 맞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것이 ‘울산왜성’, 즉 학성공원의 문화재 명칭이며, 후자에 속하는 것이 ‘서생포왜성’이다. 울산왜성은 왜성으로만 살다가 명을 다했기 때문이며, 서생포왜성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왜성’은 1935년 5월24일 지정 당시 명칭은 ‘울산학성(고적 제22호)’이었고, 서생포왜성은 ‘서생포성’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3년에 왜장 가토 키요마사가 쌓았다. 인근에 있는 수군만호진성 등의 석재를 허물어서 축성해 1598년 물러날 때까지 사용했고, 특히 사명당이 이 성안에서 가토와 담판한 사실도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우리 수군은 이미 파괴되어 사라진 만호진성터를 버리고 왜성을 주둔지로 삼았다. 이 성을 우리 수군이 사용하고 있는 모습은 규장각에 소장된 1872년 제작 ‘서생진지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내성’으로 불리는 해발 133m 산 정상부의 왜성 유구는 지금도 그대로이지만, ‘외성’으로 불리는 산 아래 서생마을에 있던 우리 수군진성의 객사를 비롯한 많은 시설물은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생포 수군진은 조선 태종7년(1407)의 기록에서 확인될 정도로 조선 전기부터 설치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에 따르면 서생포 만호진에는 20척의 군선과 767명의 수군이 있었다. 이는 같은 경상좌도에서 수영이 있던 부산포 다음 규모로 염포에 있던 도만호진보다 군선과 수군 수가 더 많았다. 울산 개운포에 좌수영이 있던 세조-성종 때도 서생포 만호진에는 7척의 군선(<경국대전> 1485)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인 영조 때(<속대전> 1748)의 서생포진에는 울산도호부 전선소와 같은 4척의 군선과 1337명의 군사가 배속되어 있었다. 이처럼 임란 이후 지금의 서생포성에는 울산 바다를 지키는 수군 기지가 늘 있었다.

그런데, 우리 조선 수군이 지키던 수군진성 이름이 ‘서생포왜성’이다. 이는 분명히 잘못되었다. 물론 현재의 서생포왜성은 가토가 이끄는 왜군이 처음 축성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들이 축성하고 주둔한 시기는 불과 5년 정도다. 그런데, 왜군이 물러간 후 약 300년간 우리 수군이 이를 허물고 객사와 동헌 등 44칸(<영남진지>)의 각종 시설을 설치하고 지켰는데,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왜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원래 조선총독부가 이 땅의 왜성을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하고자 한 뜻은 ‘자신들의 조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 위업을 기리고, 나아가서 조선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이 시행된 1934년부터 1942년까지 모두 144개의 고적을 지정했는데, 이 가운데 56개가 성곽이며, 그중 11곳이 왜성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성곽의 20%가 왜성이라는 계산이다. ‘고적’ 지정 기준이 선사유적, 주거, 제사, 국방, 산업, 분묘 등인데 왜성의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

‘서생포왜성’의 명칭은 ‘울주 서생포수군진성’으로 바꾸어야 한다. 조선총독부조차 서생포성에 ‘일본성’이나 ‘왜성’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는데, 우리 수군진성을 우리 스스로 왜성으로 부르며 의미를 깎아내리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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