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국민(國民)과 시민(市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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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국민(國民)과 시민(市民)
  • 경상일보
  • 승인 2023.09.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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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베이징에서 근무하던 시절, 필자는 코트라 무역관 사무실 한 칸을 빌려서 쓰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에너지공단을 대표해서 거기에 가게 되었으므로 명함에는 당당하게 ‘중국사무소장’이라고 적어놓았다. 중국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을 만나거나 그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행사에 가면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는 말과 ‘링다오(領導)’라는 말을 흔하게 들었다. 라오바이싱은 지위가 높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지 않은 서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링다오는 고위급 인사 또는 지도급 인사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보다 앞서 있는 한국의 에너지정책과 경험을 소개하고 기업끼리 연계해주던 필자가 링다오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 적혀 있는 국가의 정체와 주권재민의 선언이다. 대한민국의 구성원 개개인을 우리는 대개 ‘국민’ 또는 ‘시민’이라고 부른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국민’이라는 말이 개개인의 권리를 권력이 언제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므로, ‘국민’이라 하지 말자 한다. 대신에, 자율성을 전제로 권리의 비제약적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시민’이라고 부르자고 주장한다. ‘고교생을 위한 사회용어사전’을 찾아보니 ‘시민은 민주 사회의 구성원이자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79년 10월26일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고, 억눌렸던 정치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활화산처럼 분출되기 시작했다. 고인이 된 대통령의 영정과 시신을 모신 대형 버스가 서울의 주요 지점을 통과할 때, 그를 존경하던 노인들은 두루마기에 삿갓을 쓰고 나와 마마! 라고 외치며 애도했다. 왕을 부르던 호칭을 대통령에게 적용하는 장면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며 한숨을 토하게 한다.

1980년대 중반, 온 나라가 민주화의 열기에 휩싸였던 때, 대학가 운동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고 주변에서 흔하게 듣던 단어가 있는데 그건 바로 지도부(指導部)와 대중(大衆)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이들이 뒤따르는 이들 또는 함께 활동은 하지만 동원할 수 있는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고자 쓰던 비민주적인 단어였다.

팔팔하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던 필자도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씩 검은 물감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도 시민들을 라오바이싱으로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지도부라 인식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떤 때는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이 무지 위대해 보이고, 행정관료들이 굉장히 불쌍해 보인다. 필자가 ‘한국에는 대통령이 5500만명이 넘는다’고 했을 때 중국 공무원들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듣지 못했던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 되는 국가들의 모임인 3050 클럽에 가입했다. 하지만 명실상부 선진국 되기가 그리 녹록지는 않은 것 같다. 세계적 경제 대국이 되고 사회 시스템에 첨단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다고 하여 사람의 생각과 의식까지도 선진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가끔 확인하면서 가슴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 같은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해 버렸지만,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도전을 받았던 문명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수천년 동안 외부로부터의 도전을 극복하고 번영한 우리나라다. 앞으로 일어날 어떠한 일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도전의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 내부로부터 솟아 올라오는 수많은 의심과 정체성 인식의 차이로 인한 적대감이 장차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공감과 확신만이 응전대열을 묶어줄 밧줄이 될 것이다. 우리가 ‘민주 사회의 구성원이자 권력 창출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의 시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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