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왕이 묵자의 제자인 전구에게 물었다. “묵자는 학식이 넓다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인데, 품행은 단정하지만 언설을 보면 장황하기만 할 뿐 능변이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구가 대답하기를, “옛날 진(秦)나라 왕이 그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온갖 장식을 다 하고 아름답게 수놓은 옷을 입은 시녀 70명을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자는 오히려 그 시녀들을 사랑하고 딸을 학대했습니다. 따라서 진나라 왕은 딸을 좋은 곳에 시집보낸 것이 아니라 시녀들을 좋은 곳에 시집보낸 꼴이 되었지요. 또 어느 초나라 사람은 자기가 가진 구슬을 팔러 정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목란·계초와 같은 향기로운 나무로 짜고 물참새의 털로 장식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옥을 넣어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 샀을 뿐 옥은 되돌려주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매독환주(買櫝還珠)’라는 고사의 유래이다. ‘구슬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나무상자를 사고, 그 속의 구슬은 돌려준다’라는 뜻으로 표현의 화려함에 현혹돼 내용의 중요성은 놓치는 어리석은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한비자> ‘외저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비자는 당시 시대의 혼란을 틈타 그럴듯한 말로 군주를 현혹하는 학자와 신하들을 비판했다. 한비자는 군주도 그런 신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구는 한비자의 이 예화를 통해 묵자의 말솜씨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장까지 변변치 않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빠져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아 진나라 군주를 깨우치게 한 것이다.
요즘은 말이 화려한 시대이다. TV나 신문은 물론 유튜버 등 각종 SNS는 매일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저마다 자기만의 주장을 보기 좋게 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치장만 요란한 알맹이 없는 말, 명분으로 포장된 이익을 추구하는 말, 심지어 사실이 아닌 거짓말까지, 삶을 현혹되게 하는 말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는 사람 중에 매독환주의 어리석음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참으로 안타깝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