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 의료계의 숙제 중 하나, 급성 약물중독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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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울산 의료계의 숙제 중 하나, 급성 약물중독 환자
  • 경상일보
  • 승인 2023.09.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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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울산 의료계에는 몇몇 숙제들이 있다. 물론 울산만의 문제라기보다 우리나라 어디든 다 해당되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더 열악한 지역도,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지역도 있겠지만 어디든 만족스럽게 돌아가는 곳은 없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울산은 그렇게까지 나쁜 편이 아니다. 특히 예전부터 언론에서 부각되어온 응급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 역시 적극적으로 24시간 안 가리고 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병원 뿐만 아니라 울산지역의 모든 병원들, 아니 병원을 넘어 지역사회가 부각만 안될 뿐 숙제로 가지고 있는 부분들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를 먼저 꼽자면 ‘급성 약물중독’이다.

DI 환자라고 줄여 부르는 약물중독(Drug Intoxication) 환자는 사고 또는 고의(자살목적 등)로 약물을 섭취해 건강에 이상이 생긴 환자군이다. 대부분 응급상황이기에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다. 농약부터 수면제까지 섭취물질이 다양한데 이런 환자군은 정신건강상 문제가 같이 있을 수도 있기에 급성약물치료가 가능하고 또 정신과 폐쇄병동이 있어 필요시 보호자 동의 하에 정신과적 입원치료가 가능한 병원에서 수용해 치료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정석은 그냥 단어상 의미일 뿐, 어느 지역 의료시스템이든 그렇게 완벽한 준비 하에 돌아가진 않는다. 울산에는 정신과 전문병원이 아닌데도 폐쇄병동이 있는 종합병원은 딱 한 곳, 울산대학교병원 뿐이며 다른 병원들은 폐쇄병동을 따로 운영할 여건이 안 된다. 울산대학교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이고 그런만큼 다른 군의 환자들도 많이 오기에 약물중독 환자를 수용하기 힘든 상황들이 왕왕 발생한다. 그래서 다른 종합병원들도 여력이 되는 한 수용하도록 노력하지만,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를 해할 가능성이 있는 등의 이유로 애로사항이 많이 생긴다. 보통은 119 신고로 구급대와 함께 오고 그분들에게 환자정보를 전달받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상태이며 어떤 목적으로 약물을 섭취한 것인지 알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증상이 중한 환자부터 매우 경한 환자까지, 비협조적인 환자부터 협조적인 환자까지 굉장히 다양하고 파악이 쉽지 않다. 본드에 취해있어 많이 긴장하고 받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협조적인 환자도 있는 반면, 협조가 가능한 환자로 알고 수용했지만 깨어난 후 기물을 부수거나 사람들을 해하려는 환자도 있다.

주취 환자의 경우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 DI환자의 한 종류일 수도 있지만 술은 주변에 워낙 흔하니 성격이 좀 다르다. 필자는 만약 술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인류 전체 환자들 중 반은 줄었을 거라는 자조적인 말을 간혹 할 때가 있는데, 도저히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취한 환자는 위에 설명한 사례들 혹은 그 이상으로 대하기 힘들다. 남구 중앙병원에 경찰청과 협조해 운영하는 주취자센터가 있긴 하지만 거기서 수용이 안 되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아 필자가 일하는 병원의 응급실로 밤중에 많이 방문한다(보통 실려온다).

약물중독 환자군은 사실 일개병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 하다. 필자가 일하는 병원은 상황을 감안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역을 격리해 수용하지만, 실제로 간혹 힘든 문제가 발생하기에 반드시 수용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 이 환자군은 현재 이런 불분명한 영역 속에 위치해 있으며,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후송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최근 칼럼에서 다룬 내용들을 보고 건너건너 필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각지 못한 피드백을 주신 분들이 있었다. 기대치 않은 귀한 답변이었기에 정말 감사했다. 그래서 앞으로 종종 지면을 빌려 위와 같은 울산 의료계의 잘 조명되지 않는 숙제들에 대해 이야기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역량이 못 미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없지 않으나 이런 문제는 누구 한명, 어느 한 병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좀 더 생긴다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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