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삼권분립과 사법권의 독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움직일 수 없는 기초로 인정된다. 가장 최근에 사법권 독립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은 2017년에 불거진 사법농단 사건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법관 블랙리스크를 작성해 갖고 있으면서 특정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첫 번째 의혹이었고, 대법원장이 행정부로부터 상고법원 설치를 받아내기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사건 등 특정 사건에 개입해 청와대의 입맛에 맞게 재판결과를 좌우해 온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두 번째 의혹이었다. 그 사건은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서 뽑은 조사위원회 등의 조사까지 거치면서 사법부 내에서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다가 결국 2019년부터 검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양승태 전대법원장을 구속기소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사법권 독립의 원칙은 재판에 대한 외부권력의 간섭이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확립되어 온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 사건에서는 사법부 내부의 행정권에 의해 재판개입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법부 내부의 권력 또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사법농단 사건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어떻게 결론날지 모르지만, 지난 15일 오랜 공판 과정을 마치고 검찰의 구형과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이 이루어짐으로써, 그럭저럭 마무리가 되어 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당장 사법권의 독립과 관련해 사회적 파장을 가진 큰 이슈는 없어 보인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5일 한국법제연구원이 개최한 입법정책포럼에서 안철상 대법관은 ‘사법권의 독립과 입법 정책’을 주제로 한 의견을 발표하면서, “사법권의 구성·운영과 관련된 사법 정책의 상당 부분은 예산과 입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예산안 편성권과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탓에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거나 계획적인 사법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법 정책의 실질적인 결정권이나 그 효과가 행정부나 입법부에 의해 좌우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상 법률안 제출권은 국회와 정부만 갖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법원의 구성이나 소송에 관련된 법률을 새로 입법하거나 개정하려고 해도 법무부 등을 통해 정부 입법을 추진하거나 국회의원을 통해 의원입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는 사법권이 독립적으로 사법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법원의 예산편성권이다. 헌법상 예산의 심의확정은 국회에서 이루어지지만,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는 권한은 정부에게만 있다 보니, 대법원은 자체적으로 편성한 예산안을 정부의 담당부서인 기획재정부에 제출할 수밖에 없고, 기획재정부는 법원의 예산안을 감액해 새로 편성한 후 국회에 제출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매년 예산 편성 시기만 되면 대법원이 기획재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사법권 독립도 그만큼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윤옥 판사(울산지방법원 부장)는 최근 몇 차례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주목할 만하다. 그는 주장하기를, 헌법의 여러 조항을 조화롭게 해석하면, 법원의 예산안은 대법원이 만들고 그것을 행정부의 담당부서가 취합해 국회에 제출하되, 행정부에서는 대법원이 제출한 그대로 취합만 해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재정법과 같은 헌법의 하위법률들이 행정부에게 대법원의 예산안까지 함부로 손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니, 이는 잘못된 입법이며 법률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사법권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위 두 가지 권한이 대법원에도 주어져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그 동안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이 행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사법농단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윤옥 판사의 논문이나 안철상 대법관의 공개주장을 계기로, 이 부분에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