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영은 울산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다. 그 대표적 상징물 중 하나가 바로 올해로 축성 606주년을 맞이한 ‘병영성’이다.
오늘날 ‘병영’이라는 지역명을 짓게 한 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인 1417년에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이 옮겨 오면서 축성됐다. 당시에는 병영 바로 아래가 바다였고 지금의 병영성 북문까지 배가 드나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병영성은 수로를 지키는 대표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병영성은 역사에서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특히 정유재란 당시 왜군이 지금의 학성공원에 ‘왜성’을 축성하며 병영성 돌을 모두 끌어다 쓰며 오랜 세월 폐허 아닌 폐허로 방치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병영성은 우리 울산과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소중한 유물이자 자랑 중 하나지만 정작 병영성을 끼고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애물단지와도 같은 아이러니가 서려 있다. 이유인 즉, 병영성이라는 국가지정 문화재에 가로막혀 오랜 기간 재산권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보호받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1987년 병영성이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이후 20년 넘도록 방치돼 온 끝에 2009년에서야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됐고 벌써 14년째 진행 중이다. 결국 병영성 주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던 주민들은 문화재 지정 후 36년이란 기나긴 세월동안 희생만을 강요받아 온 셈이다.
더욱 문제는 복원사업이 아직도 진행 중이고 완공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적지 않은 기간이 남아있어 병영 주민들에게는 암울한 미래로 다가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결국 병영이 경쟁력을 갖추고,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주환경을 만드는 길은 그 지역만이 가진 역사·문화 자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길뿐이다.
중구의 첫 주민발안 조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 외솔한글·역사·문화마을 조성 및 지원조례안’ 역시 핵심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병영지역을 앞으로 어떻게 활성화 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미 지난해 10월 주민들로부터 중구의회에 접수돼 이제 최종심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지방정부의 법령과도 같은 조례가 가진 특수성 때문에 그동안 주민과 의회, 의회와 집행기관인 중구청, 그리고 주민과 구청이 서로 소통과 의견교환 절차를 거치며 조례를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한 의견대립 등 소소한 진통도 겪었지만 결국 지금 병영이 처한 현실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역사와 문화자원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 것도 나름의 성과다. 이제 조례가 제정되면 이를 근거로 역사 문화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정책과 주민 참여형 지원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기대한다.
병영성을 어떻게 다듬어 울산의 대표 문화자원으로 키워낼지는, 결국 하나로 모아진 주민의 뜻과 이를 뒷받침할 중구청의 행정력, 그리고 민-관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내야 할 중구의회가 삼위일체로 힘을 발휘해야 한다.
병영성이 조금씩 제 형태를 갖추며 울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이색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아울러 호국의 성터인 황방산에는 새롭게 마련된 맨발 등산로 덕분에 관광자원으로서의 가능성도 발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단장한 외솔기념관에는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많은 학생들이 방문하며 외솔선생의 한글사랑 정신을 배우는 장으로 십분 활용된다고 한다. 병영이 당장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뤄내진 않았지만 시나브로 작은 변화의 움직임들이 모여 지역의 새로운 동력이 되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제 주민과 의회, 그리고 구청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은 중구의 첫 주민발안조례인 ‘병영 외솔한글·역사마을조성 지원 조례’가 또 하나의 단초가 되어 병영의 내일을 희망으로 밝히는 등불이 되길 바란다.
김도운 울산 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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