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청난 폭염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지난달, 입맛이나 돋우어 볼까 하여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맛집에 다시 갔을 때, 그날도 역시 입장 못 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잠시 기다리는데 홀에서 서비스하는 아르바이트생인 듯 유니폼을 입은 두 젊은 여성이 한 명씩 유리문을 밀고 나와 건물 옆쪽 주차장 근처로 갔다가 잠시 후에 격한 니코틴 냄새를 풍기며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호명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식탁이 몇 개 안 되는 작은 식당이어서 그 두 사람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그 전에 와서 먹어본 그 집 음식이 맛있어서 다시 찾아온 맛집에서 갑자기 입맛이 떨어지고 불쾌한 생각마저 들었다.
필자도 오래도록 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다. 요즘도 어쩌다 담배를 음미하는 사람 옆을 지나다 보면 연기가 구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당시에는 사무실 책상이나 시외버스 의자 등받이에까지 재떨이가 구비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외국을 나갈 때 탑승 시간이 빠듯할 때도 공항 흡연실을 찾아야 하고, 식사 후에는 의무적(?)으로 피워야 하는 등 시간 낭비에 손가락이 누렇게 되고 냄새가 몸에 배어 위생상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담배 배운 걸 후회하고 끊기 위해 한약까지 복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담배에는 40여 가지의 발암물질과 400여 종의 유해 물질이 들어있다고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금연 운동을 벌이던 시대도 있었다. 요즘은 금연 클리닉이 있어서 체계적으로 담배를 끊도록 시스템화된 곳도 많다. 또 비교적 위생적이고 뒤처리가 용이한 전자담배도 많이 애용하고 있다.
사실 애연가들은 설 자리가 없다. 담배에 부과된 많은 세금을 고스란히 내고 적절한(?) 대접조차 못 받는 흡연가들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운전 중에 창문을 열고 피다가 도로에다 꽁초를 던져버리거나 흡연 장소가 아닌 곳에 담배를 비벼끄고 그 위에 침을 뱉는 행위, 아파트에서 피우다가 이웃에 피해를 주는 것 등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담배는 임진왜란 때 포르투갈어 타바코(tobacco)가 일본에서 ‘담바고’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의 말아 피우는 시가(cigar, 엽궐련) 대신 파이프 담배랄 수 있는 ‘곰방대’부터 들어왔다.
조선 시대에는 담뱃대의 길이가 신분의 차이를 반영하기도 했는데 양반들은 장죽을, 서민들은 짧은 곰방대로 피웠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기녀(妓女)들도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 것이 담배에 대한 예의이며, 담배를 피우며 요리를 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흡연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이웃이 불편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0년을 피우다가 끊은 15년 전에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 거창한 계획을 세워 금연하려 한다면 작심삼일이 될 확률이 높다. 금연은 의지도, 대단한 결단력도 아니다. 그냥 안 피우면 그만이다.
교통에도 문화가 있고 선거에도, 음주에도 문화가 있듯이 애연가들도 올바른 흡연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품격 높은 ‘끽연문화’ 정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담배를 피우는 데 특별한 품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술도 어른께 배우라고 했고, 차 마시는 ‘끽다(喫茶)’에도 다도(茶道)가 있듯이 끽연(喫煙)에도 적절한 에티켓을 지킨다면 기호식품을 즐기는 데 바람직한 문화가 형성되리라 생각한다.
권영해 시인·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