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토에 이예 동상이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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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교토에 이예 동상이 세워지기를 바라면서
  • 경상일보
  • 승인 2023.09.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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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는 지난 9월14일 이채익 국회의원과 일본 교토를 방문했다. 교토 민단 건물 앞에 충숙공 이예 선생의 동상을 세우려는 계획을 민단 임원진과 협의하기 위함이었다. 민단(民團)의 공식 명칭은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이다. 1946년 창단됐으며, 민단 본부는 동경에 있다.

(사)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회장 양명학, 울산대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이를 계획해 왔으며, 필자는 홍보이사로서 이 방문에 임하게 되었다. 이채익 의원은 9월15일 동경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귀한 시간을 내 교토에 동행했다.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이예 선생의 동상을 세우는 일에 동참해 준 이채익 의원에 감사를 표한다.

교토는 8세기 헤이안 시대 이래 약 1100년 간 일본의 수도로서 역사의 중심무대였다. 임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의 덕천 막부가 들어서고, 행정의 중심은 동경(에도)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천황’의 어소(御所)는 여전히 교토에 있었으며,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초기에 가서야 동경으로 옮겨졌다. 일본의 수도가 교토에서 동경으로 바뀐 것도 이 때였다.

이예 선생이 임금의 명을 받아 일본에 파견된 것은 40여 회에 달하지만, 교토의 일본국왕(막부 쇼군)에게 파견된 것은 1422년, 1424년, 1428년, 1432년의 4회였다. 4회 모두 막부 쇼군을 만났다.

기념사업회는 2010년에도 몇 차례 교토를 방문, 이예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려 노력했다. 당시에는 도시샤 대학 교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이예 선생이 활동한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였으며, 당시 막부 쇼군의 거처가 지금은 도시샤 대학 구내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도시샤 대학에 있어 한국과 친숙한 느낌도 있었다.

일본 정계, 문화계, 학계 유력 인사들의 협조로 계획이 잘 진행되던 중, 2010년대 한일관계의 악화 등으로 인해 추진의 동력을 잃게 됐다.

근간 한일관계의 개선과 함께, 교토 기념비를 다시 추진하게 됐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필자는 이채익 국회의원과 동행해 박진 외교부장관과 면담을 가졌다. 또한 김영주 국회 부의장과도 면담했다. 그리고 국회부의장실과 한일의원연맹(회장 정진석)이 주최한 한일현안연구회 초청강연에서 강연할 기회를 가졌다.

면담과 강연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교토 기념비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첫째, 한일 양국의 우호에 가장 큰 걸림돌은 1592년 임란과 1910년 국치로 이어지는 침략의 역사이며 이로 인한 정서적 앙금이다. 이는 즉, 우리 국민에게 있는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일본 국민에게 남은 가해자의 우월의식이다. 진정한 우호를 위해서는 그 정서적 앙금을 걷어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이예 선생은 조선이 우월했던 시대의 외교관이었다. 그의 동상을 통해 그 시대의 역사를 되살리고 우리의 트라우마와 일본의 우월감(superiority complex)을 치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면담과 강연을 진행하면서, 또한 외교부 및 오사카 총영사관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념사업회는 새로운 비전을 얻게 되었다. 즉, 기념비 대신에 좀 더 시각적 임팩트가 있는 동상을 세우되, 금년말 재건축이 완공될 교토 민단 건물 앞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이번 교토 방문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이채익 의원은 차별 받는 동포사회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해 온 민단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한일우호를 위한 표상으로 이예 선생 동상이 갖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김정홍 교토 민단 단장은 동포사회를 위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협조에 감사하면서, 재일동포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예 선생의 동상이 민단 건물 앞에 세워지기를 바란다며 화답했다.

민단 건물은 ‘천황’의 어소(御所)와 교토역·전철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우수하다. 올해말 혹은 내년 1~2월 이곳에 이예 선생의 동상이 세워지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의 우호, 그리고 울산 시민과 교토 시민 사이의 교류가 증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명훈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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