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실언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말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수정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때가 있고 치명적 결과를 초래해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심코 한 말이니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될까요? 글쎄요. 사람의 말과 행동에 무심이란 것이 있을까요? 의도가 없다고 해도 ‘무심코’는 성의가 없고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죠. 세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정말 혀가 미끄러진 경우가 있고 살짝 속내를 의심할 수 있는 실수가 있으며 그 사람의 마음을 꼭 돌아보아야 하는 의미 있는 실수까지 말입니다. 먼저 가벼운 말실수는 이런 것이겠죠. 어느 개그맨이 ‘인뢰가 가는 신상이다’라고 한 말은 ‘신뢰가 가는 인상이다’라는 말을 하려다 한 실수라고 할 수 있겠죠.
혀가 아니라 마음이 미끄러진 것으로 지적받을 수 있는 경우는 문제입니다. 연인 간에 말실수는 큰 불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연인을 부르다 옛 연인의 이름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더군요. 아직 잊지 못하는 것 아니냐, 은근히 비교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말실수를 정신의학에서는 무의식이 그 존재를 드러낸 것으로 봅니다. 무의식을 감시하며 누르고 있던 의식이 ‘아차’하고 놓친 것이죠. 정신과 의사인 저는 무의식이 우리 의식의 턱 밑에서 항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억압’과 ‘투사’란 심리기제를 자주 사용해 무의식의 그늘이 길어지면 호시탐탐 의식의 실수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드러난 조금 심각한 말실수가 있죠. 전공의 의사 시절은 참 고단합니다. 진료와 공부를 병행하며 제대로 못자는 건 물론, 먹고 노는 젊은 시절의 권리는 포기해야하죠. 어느 전공의가 세미나에서 다발성뇌경색 ‘치맥’이라고 해버려 교수님의 분노를 샀죠. 그가 전날 발표를 준비하는 중 친구의 ‘치맥’ 제의를 가슴 아프게 거절한 것이 원인이 아니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랫동안 쌓아온 공적이 세치 혀로 무너지는 경우를 정치인에서 봅니다. 가장 큰 곤욕을 치러야 했던 것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발언 이었죠. 일파만파로 커지자 그는 엎드려 잘못을 빌기도 했으나 돌이키지 못했고 이 발언으로 정치생명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전(前) 대통령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며 의원직을 사퇴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직 사퇴’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문재인 전(前) 대통령은 미국 순방에서 백악관 방명록에 ‘대한미국 대통령’ 이라고 한 것은 글 실수가 되겠죠. 윤석렬 대통령의 연이은 말실수 중 올해 초 ‘아랍 에미리트의 적은 이란’ 발언은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이란의 ‘양국관계 재검토’ 라는 강경대응까지 초래해 순방성과인 300억달러 보따리와 다보스포럼 선언은 희미해졌습니다.
이들의 말 미끄러짐은 혀와 마음 사이의 어디쯤일까요? 실수한 것은 맞지만 그 사람의 무의식 속내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말이 미끄러진 당사자는 자기 마음이 왜 미끄러졌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특히 발언이 국가의 명예와 이익에 직결되는 지도자는 그래야 합니다. 바이든, 그의 말실수는 팔순 고령으로 이해를 받을 수는 있겠지요. 우리나라 지도자는 자신의 역린이 건드려지면 분노하고 폭주했습니다. 자신의 말실수에 대한 태도를 보니 민심을 제압하려는 제왕적 대통령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다른 의도는 없다,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부인만 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의식 밑에서 눌려있다 툭 튀어나와버린 무의식을 통찰한다면 마음의 업그레이드가 되어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고 말은 영혼을 관통합니다. 말은 허공에 대고 쓰는 언어이니 글 이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혀를 보지 않고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