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하루에 한 건씩 홈페이지나 전화로 민원 접수해주세요. 민원 계속 넣어서 행정 마비시켜야 합니다.”
‘악성민원’이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지자체, 학교는 물론 법원, 경찰서 등 대민기관 조차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악성민원에 행정력을 낭비하기 일쑤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시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공적 활동이 악성민원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된다.
사회전반에 걸친 인식변화가 시급하다. 이에 본보는 악성민원 실태와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을 통해 궁극적인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을 모색해 본다.
◇하루 660여건…울산 유독 증가세
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접수된 민원은 1238만1209건에 달한다. 2021년 보다17.7% 감소했다. 해마다 민원 발생은 전국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유독 울산은 증가 추세다. 지난 2020년 접수된 전체 민원은 18만2810건이다. 2021년은 20만9769건, 지난해는 총 24만3311건이 접수돼 매년 15%가량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10월 기준(25만2212건)으로 이미 지난한 해 전체 민원 건수를 뛰어 넘었다.
지난해 기준, 단순 민원 접수 건으로는 울산은 전국 17개 시·도 중 14위다. 그러나 인구 1만명 당 민원 건수는 2189건, 6위로 적지 않다.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매년 중구와 남구의 민원 접수 건수가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특히 중구의 증가율이 높다. 지난해 기초자치단체 민원 접수 증가율 상위 15개 기관 중 중구가 3위를 차지했다. 중구는 지난 2021년 2만4645건에서 지난해 3만6041건이 접수되며 46.2%나 폭증했다.
◇몸살 앓는 재건축·재개발사업
항의·보복성 민원의 타깃이 되는 대표적인 대상이 재건축·재개발, 지역주택조합, 가로주택정비사업 현장이다.
울산지역 곳곳에서 진행되는 이들 사업장에는 수시로 행정 대집행을 요구하는 ‘항의성 민원폭탄’이 쏟아진다.
실제로 울산 중구지역의 한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행정 항의성 차원으로 지난달 15일부터 17일까지 90여건이 접수됐다. 해당 조합은 지난 8월1일부터 23일까지도 동일 민원 80여건을 접수하기도 했다. 중구지역의 다른 조합에서도 지난해 7월2일부터 27일까지 150여건의 동일 민원이 발생했다.
지역주택조합 등 소규모 정비사업도 예외없이 이틀에 50~100여건의 접수가 빈번하다.
행정 집행에 불만이 있거나 조합 내부 분열의 일도 관할 지자체가 나서기를 요구, 지자체 민원실에 일명 ‘좌표’를 찍고 동일 민원을 지속적으로 접수하기를 반복하며 관할 지자체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화력을 보여줘야 한다” “행정을 마비시켜 빨리 해결되게 해야한다”는 등 위협적 행위가 동반되기도 한다.
담당 공무원이 답변을 해도 제기한 민원이 해결될 때까지 막무가내로 같은 글을 게시하기도 해 업무 마비 사태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같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데다, 초기단계에 진입한 곳이 대다수인데 이러한 항의성 민원을 제지할 별도의 처벌 수단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충민원창구도 반복 민원의 표적
각 지자체는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부담을 주는 사항에 관한 민원을 ‘고충 민원’으로 별도로 분리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울산시 시민고충처리위원회 운영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울산 고충민원 신청 및 처리 웹페이지를 통해 고충민원이 총 8304건 접수됐다. 여기서도 동일 민원이 반복됐다. 전체의 94%인 7796건이 ‘모 지역의 송전탑 이설 요구건’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일·유사 건의 복수 민원이 수시로 접수되고 있다”며 “인터넷 민원 접수뿐만 아니라 전화로도 민원 요구가 오면서 응대하는데만 시간이 소요돼 다른 업무도 힘들어진다”고 호소했다.
정혜윤기자 hy040430@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