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동북아 삼국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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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동북아 삼국의 자부심
  • 경상일보
  • 승인 2023.10.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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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수년 전 만학도인 나는 국제정치학 박사 수업을 듣던 중에, 교수님의 제안으로 ‘EU로 통합된 유럽과 달리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짧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은 ‘여러분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3국이 이슈에 따라 상호협력을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쟁 관계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구미 당기는 토론 주제였다. 하지만 그에 관해 정립된 이론은 따로 없었다. 석사에서 바로 올라온 학생들은 저명한 학자의 이론을 들어 설명했고, 고위급 군사간부나 해외에 주재 근무했던 정보 전문가들은 그들이 경험한 바를 가지고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일본국(日本國),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에서 드러나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갖고 설명을 시도했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식 산업화에 성공한 후,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편입되겠다고 주장할 정도로 강성해진 일본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지역 패권을 획득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자국의 이름에 ‘태양의 근본’이라고 하는 자기 인식을 담지 않았나! 그런 인식을 기반으로 그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대동아’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합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서, 1940년 7월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비해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사상을 국호에 담은 경우였다. 중화주의(中華主義)는 중국에서 나타난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이다. 중화(中華)는 중국이 온 천하의 중심이면서 가장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선민(選民) 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중화가 아닌 나라는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나라를 오랑캐라고 생각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1392년부터 조선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는 1897년 고종의 명에 의해,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한’ 또는 ‘대한’(大韓)의 어원은 삼국시대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틀어서 삼한이라 칭했는데, 그 삼한이 통일되었다는 의미에서 대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韓)이라는 말은 종교적, 정치적 의미가 복합되어 고대부터 쓰이던 낱말로서, ‘하나’ ‘하늘’ ‘크다’ ‘칸(汗)’ 등 여러 가지로 뜻이 해석되고 있다. 이승만, 김구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화정 실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더해 대한제국 대신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를 지었고 그것이 헌법에 반영되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1989년 모 전자회사에 다닐 때, 연구원들은 수시로 동경에 출장을 갔다. 그때마다 그들은 아키하바라 상가에 들러 신기한 물건들을 사 왔다. 구매담당자들은 그 물건이 밀수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관공서에 열심히 드나들며 설명해야 했다. 일본을 빠르게 따라가야 하던 당시의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렇게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완성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수천년 한중 외교역사에서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 귀한 손님 대접을 받던 시절이 최근에 짧게나마 있었다. 2008년 북경 올림픽 이후 중국에서 자국을 세계 중심국가로 인식하는 풍조가 다시 거세지고 애국주의와 전랑외교(戰狼外交)라는 공세적인 단어가 일상어로 자리 잡고 있지만 말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중화의 나라에서 귀한 손님 대접을 받아본 한국인은 언제라도 그런 대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자고로 우리 선조들은 사람 이름과 동네 이름, 가게 이름을 짓는 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 그에 관한 이론을 학문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목하 북미와 유럽, 러시아를 포함한 온 세계에 자국중심주의의 광풍이 불고 있다. 동북아시아 3개국도 예외없이 자국의 힘과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지어놓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름값 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인식이 어떠하냐가 결과를 내는 걸 보아왔으니 기대할 만 하지 않은가?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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