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가 원산지인 ‘반얀트리’(Banyan tree) 라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성장 방식이 독특하다. 줄기에서 수염처럼 생긴 공기뿌리가 아래로 뻗어 내려와서 땅 밑으로 들어가 뿌리가 된다. 그리고 다시 그 속에서 줄기가 나와 나중에는 숲과 같은 군락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도의 ‘The Great Banyan’은 약 4000여개의 뿌리줄기가 내려와서 약 6000평의 넓이에 퍼져 있어 마치 거대한 숲처럼 보인다고 한다.
군락을 이룬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뿌리가 하나라는 것이다. 하나의 뿌리에서 형성된 큰 군락 아래에는 다른 나무들이 뿌리를 내려 자랄 수 없어 결국 고사한다고 한다. 이는 나무들끼리 뿌리를 서로 얽어 지탱하고 영양분까지 서로 제공하며 군락을 이루고 살아가는 ‘레드우드’와는 사뭇 대조적인 나무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취지로 도입한 제도가 지난 10월4일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는 ‘납품대금연동제’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노력으로 지난 1월 중소기업계의 14년간 염원이었던 ‘납품대금연동제’ 도입을 담은 ‘상생협력법’이 개정·공포되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상생협력법 시행령’은 지난 9월19일 국무회의를 거쳐 개정되었다. 개정된 시행령에는 이 제도가 현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공정한 거래문화가 조성되도록 중소기업들의 애로와 건의사항을 최대한 반영했다.
납품대금연동 관련 약정서 기재사항, 연동제 예외 사유인 단기 및 소액계약 기준 마련, 위탁기업들의 법률 악용에 대한 벌점과 과태료 기준 마련 등이 주요 내용이다. 예를 들면, 위탁기업이 연동에 관한 사항을 적지 않고 약정서를 발급할 경우 1000만원의 과태료와 최대 3.1점의 벌점이 부과된다. 그리고 연동제 시행에 따른 분쟁사건에 대해 지방중기청이 조사권과 시정·권고명령, 벌점 부과 등에 대해 권한을 위임받았다.
납품대금연동제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3대 주력산업이 뚜렷하고 연관 중소기업이 70%에 달하는 울산에 시급하게 안착되어야 할 제도라 생각한다. 울산이 산업의 모범도시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3대 주력산업 대·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상생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너 먼저 나 먼저’가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이 가야 어렵고 힘든 경제상황을 잘 극복하고 산업수도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납품대금연동제가 조기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올해 12월말까지 동행기업(납품대금연동제를 사전에 도입하는 수·위탁기업)을 모집하고 있다. 올해 초 전국에 6000 개사를 목표로 제시했는데, 목표치가 너무 높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 10월초 기준으로 이미 6700여개 사가 넘는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울산지역에서도 200여 개사가 넘는 기업이 신청해 제도 도입에 따른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따라 이제 기업은 사회적 책임(CSR)과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지난해 대·중견기업 등을 주축으로 국민이 요구하는 기업의 새로운 역할에 호응하고자 신기업가정신협의회(ERT : Entrepreneurship Round Table)를 발족한 바 있다. 현재 전국에서 800여 개사가 참여하고 있고, 울산지역 또한 40여 개사가 동참해 기업의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납품대금연동제 동행기업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납품대금연동제의 자발적 참여는 지역·파트너 기업들과의 상생 등을 기치로 내건 신기업가정신을 실천하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제 납품대금연동제라는 상생의 배는 광활한 바다 위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수·위탁기업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동행으로 실질적인 상생과 협업의 산업생태계가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이종택 울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