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인다. 특히 중위소득의 50%를 기준으로 측정하는 상대적 빈곤율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증가하는 불평등에 반하여 한국 최상위층 1%의 부는 가공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상위 1% 부자는 전체 부의 18%를 차지한다.
재벌닷컴 자료에 따르면 전문경영인보다 재벌 2세, 3세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상속형’ 부자가 70%를 차지한다. 다른 주목할 현상은 세습이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세습 사회’가 등장하면서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사회이동은 사라졌다고 본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되는 교육기회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결정되면서 균등한 기회라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출생에 따라 결정되는 경직된 계급구조가 출현하면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처럼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천문학적 부와 소득을 가진 강력한 초부유층 세력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쌓아올린 부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설득할 강력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대한 부를 통해 수많은 싱크탱크, 대학, 언론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현대 정치의 특징을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로 묘사했다. 포스트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법의 지배가 이뤄지지만, 민주주의의 근본 목적을 배신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묘사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를 수호할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정치의 역할은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는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도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적 분배를 당연하게 간주한다. 대표적으로 ‘인적자본’ 이론은 개인의 교육과 기술 수준의 차이에 따라 소득 차이를 분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불평등의 원인을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에게 떠넘긴다.
19세기에 유럽에서 등장한 공산주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을 주장했다. 이런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갈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개인의 재산 소유 상한을 가지지 못한 자의 4배 한도로 허용하고, 나머지는 국가에 헌납하자고 제안했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1대 4로 정하자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혁명 이후 소련은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공장 노동자와 경영자의 임금 차이를 1대 6 수준으로 제한했다. 위험한 일을 하는 탄광노동자의 수입은 대학 교수보다 높았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 당시 소득 격차를 3배 이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기계적 평등을 추구한 공산주의 국가는 유토피아주의의 오류에 빠졌다. 사유재산의 철폐를 통한 기계적 평등은 시민의 모든 생활을 통제하는 공산당 관료의 독재를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누진적 조세 제도를 선택한다. 누진소득세가 처음 제안된 것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었지만,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인권선언’에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납세하는’ 원칙이 정치적 선언으로 등장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능력에 따라 소득의 불평등이 생기는 만큼 고소득자가 더 높은 세율을 부담하는 것이다. 누진적 소득세는 20세기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효과적인 제도가 되었으며, 계급타협과 사회통합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금을 통한 부의 재분배는 평화로운 합의보다 전쟁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소득세율은 80%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최고 한계세율을 94%로 인상했다. 누진세 강화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1914~1945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불평등은 감소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누진세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연봉을 결정하는 최고경영자들은 보수를 천문학적으로 올렸다. 대기업에는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김준수 제일병원 기획이사 본보 차세대CEO아카데미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