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기 전 경남도청을 방문할 때마다 교통 체증을 피해 부산 구포로 가지 않고 밀양을 통해 넘어가면서 간혹 영남루에 들러서 아름다운 건축미와 선조들의 지혜에 깊은 감동을 받곤 했다. 그때마다 태화사의 일부로,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태화루가 복원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변에 자리했던 태화루는 신라 643년에 태화사와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밀양의 영남루(보물), 진주의 촉석루(경상남도유형문화재)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으로도 알려져 있는 태화루가 있다면 산업도시로만 알려진 울산의 이미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2010년대 들어 울산시가 태화루 재건을 발표했다. 근접한 지리적 고증에 따라 로얄예식장이 있던 현재의 부지가 선정됐다. 2011년 9월 공사에 착수, 2014년 3월에 전통건축양식의 태화루가 완공됐다. 21년간 울산의 이정표이자 울산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로얄예식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태화루의 온전한 복원이라 하기엔 미흡함도 많지만 새롭게 들어선 태화루가 울산의 정신적 역사를 이어가면서 명실상부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울산 지역 언론에서 크게 보도된 ‘태화루 옆 스카이워크 설치’라는 기사를 접했다. 암담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어서 건축인의 한사람으로서 소회를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중구의 일부 주민들이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울산시의원에게 건의한 것을 시작으로 진행된 스카이워크 건립은 울산시민들과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태화루와 스카이워크의 연계를 통해 지역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시작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지방도시가 인구감소로 상권을 잃고 소멸위기에 처하면서 지자체가 각양 정책을 앞세워 케이블카, 출렁다리, 잔도 등 시민들의 편의에 기인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울산 또한 태화강국가정원과 연계하여 태화루의 접근성 향상과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스카이워크 설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개된 조감도를 보면 누가 봐도 태화루와 스카이워크, 두 건축물이 조화롭다는 생각은 전혀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와 미래의 만남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지만 조감도에서의 스카이워크와 태화루는 너무나 조화롭지 못 할 뿐 아니라 오히려 주변의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법적으로 문화재보호구역 내에서는 건축물의 높이와 너비, 경사지붕의 형태까지 규제할 수 있다. 이는 일부 시민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되지만 우리 모두의 재산인 문화재를 지켜내기 위한 방안이다. 하물며 최근 김포에서는 ‘왕릉뷰’ 문제로 크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물론 태화루는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법적인 문제는 없다. 하지만 민간 주도가 아닌 관 주도 사업의 경우, 지정문화재는 아니더라도 울산의 상징인 태화루라면 문화재에 준하는 법적 조건을 적용하여 보호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울산의 상징인 태화루의 경관과 장소성을 훼손하는 것은 울산의 시민들과 기업, 행정당국이 뜻을 모아 복원한 울산의 역사문화가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태화루는 물론 태화강의 정취를 훼손하는 거창한 스카이워크의 설치는 두고두고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지도 모른다. 건축물은 한번 설치하고 나면 철거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성에 기인한 관광이 목적이라면 울산 곳곳에 스카이워크를 설치할 곳은 적지 않다. 설령 통행을 위해 반드시 스카이워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시설이어야 할 것이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존재 그 자체로 울산 시민에게 큰 가치와 의미를 준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지금의 태화루가 영남의 3대 누각다운 자태를 뽐내도록 가만 놔두면 안 될까? 더 이상 태화강 수변공간에 어떤 시설을 덧붙여 강의 자연성을 훼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자연은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줘야 할 유산이 아니라 미래세대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손진락 전 울산시건축사회 회장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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