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사람이 사람다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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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사람이 사람다움에 대하여
  • 경상일보
  • 승인 2023.1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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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우 울산TP 에너지기술지원단장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남자는 개에게 자기를 아빠라 부르라 하고 여자는 개를 자기 딸이라 부르는 세상에서 말이다. 실은 나도 대놓고 웃을 입장이 못 된다. 우리 집에 말티즈 한 마리가 입양되어 들어오기가 무섭게 우리 식구는 곧 내 성(姓)을 따라 이도도(李都道)라 이름 지어 줬다. 이도도 학생(學生)이 15년 넘게 우리와 함께 살다가 무지개 다리 건넌 그날 사람 아들은 추후 그의 아비가 돌아가셔도 그럴까 싶을 정도로 방성대곡했다. 그 슬픔을 위로하고자 마누라는 어린 아이의 장례에 방불한 예의를 갖추어 이도도군을 송별했다.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 집에만 있던 특이한 일은 아닌 듯하다.

시세가 이렇다 보니 청춘 남녀가 결혼해도 2세는 포기할지언정 강아지나 고양이 하나는 꼭 키운다. 개, 고양이 키우다가 사람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에게 개를 언니라고 부르라 가르치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비루한 인격을 소유하고 양심의 기능을 망실해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모양새밖에 없는 이를 가리켜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 부르지 않던가? 그런데 사람이 맹견에게 혹독하게 물려 사경을 헤매게 되어도 기껏 주인장이 한다는 말이 “우리 개는 절대 사람을 물지 않는다. 도대체 어쨌길래 우리 순한 개가 그렇게 했겠느냐?” 하니 우리는 요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해력이란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힘’이라 한다. 분석력이나 기억력, 판단력은 우리가 보통 아이큐(Intelligence Quotient)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러한 능력은 이미 알파고라고 하는 초기 인공지능 기술에서 사람의 능력 일부를 앞서기 시작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압도되어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적어도 창의력만큼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 챗 GPT를 필두로 작사, 작곡, 논문 쓰기, 보고서 쓰기, 신문기사 쓰기, 그림 그리기 등의 영역에서 사람의 존재가치를 의심케 하는 일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있다. 수 많은 시간 괴로워하고 아이를 낳는 고통을 거쳐 한 편씩 써내던 글이 몇 분 만에 깜짝 놀랄 명작수준으로 만들어지니 이제 사람의 설 자리는 어디인가? 최근에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았듯 딥 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유인촌 장관이 고 김광석 가수의 ‘서른 즈음에’를 부르는 동영상을 만들어 시연했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한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죽은 이의 목소리와 사진을 합성하고 조작해 마치 그가 살아 있는 듯이 만든 영상은 현실과 비현실의 벽을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기계적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아니라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보자. 우선, 지혜를 보자. 한글대사전은 지혜를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정의한다. 공정하고 올바르게 사리를 분별, 판단하고, 상황과 경우에 맞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주대학교 김형술 교수는 “총명한 사람이란 무언가를 주의 깊게 들을 줄 알고, 무언가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다른 이에 의하면 “명철(Understanding)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지식(Knowledge)은 경험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을, 지혜(Wisdom)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통찰력(Insight)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See the Unseen), 즉,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아뿔싸! 이것마저 무한정한 데이터의 모집, 분석 및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서 사람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변호사, 판사들의 업무를 넘어 종교 지도자들이 상처받은 영혼들을 어루만져 줄 설교 작성까지도 인공지능의 경지로 넘어갈까 우려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결국, 사람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공감하는 마음, 겸손한 태도, 따뜻한 마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뇌와 전두엽과 심장을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 벗어나기 힘든 거센 탁류가 대세가 되어가기 직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깊이 숨 들이마시면서 나도 상대도 사람임을 인정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한우 울산TP 에너지기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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