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7)]투니스 메디나 ; 이슬람 도시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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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7)]투니스 메디나 ; 이슬람 도시의 형성
  • 경상일보
  • 승인 2023.11.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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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화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부터 출발한 이슬람군의 헤지라(Hejira; 聖戰)는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은 정복한 땅을 식민지로 삼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했다. 오늘날 동부 리비아에서부터, 튀니지, 그리고 서부 알제리에 이르는 땅을 그들은 이프리카야(Ifriqiya)라고 불렀다. 그리고 카이루안(Kairouan)을 그 중심 도시로 삼았다. 원래는 동로마제국의 요새가 있었던 곳인데, 이를 빼앗아 도시를 만들고 서북 아프리카로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카이루안(Kairouan)은 튀니지에 건설된 최초의 이슬람 도시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이곳을 새로운 이슬람 정착지로 만들어 갔다. 이슬람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원을 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슬람 사원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서 도시의 위상과 종교적 신성성을 표현하는 상징이었다, 그들은 새 도시의 중심부를 메디나(Medina)라고 불렀다. 원래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헤자즈 지방에 있는 도시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헤지라(聖戰)를 시작한 곳이다. 이슬람권에서는 메카, 예루살렘과 더불어 3대 성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새로 개척된 도시에도 메디나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신성한 도시로서의 의미를 표현했고, 이후 메디나는 ‘도시’라는 보편적인 의미로 통용됐다.

▲ 투니스 메디나 성문.
▲ 투니스 메디나 성문.

카이루완의 메디나에서도 대모스크(Uquba mosque)가 건설됐다. 북아프리카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모스크 중 하나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9세기에 재건된 것이다. 모스크는 아케이드로 둘러싼 사각형 중정 부와 지붕 덮은 기도실 부로 구성된다. 원초적인 구성이다. 기도실 중앙 입구와 미흐랍(mihrab) 천정에 얹은 작은 돔이 앙증스럽다. 거대하고 화려한 돔 지붕으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의 모습이다. 사원의 모퉁이에는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한 탑(minaret)도 세웠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나렛이며, 이후 모든 미나렛의 원조가 됐다. 사다리꼴 직육면체를 점점 줄여가며 3개 층으로 쌓은 미나렛은 단순하면서도 웅장하다. 2층부와 3층부에서는 말굽형 아치 창을 두어 아랍 건축의 미학적 감성을 표현했다.

헤지라를 통해 정복된 도시들은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총독이 통치하다가, 국가의 체제와 기반이 갖춰지면서 이슬람 봉건 제후국으로 성장했다. 아프리카에 발판을 마련한 제후국들은 이베리아 반도로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 독립적인 칼리프(또는 술탄) 국가를 세우게 된다. 새로운 종교지도자를 수장으로하는 이슬람 국가의 탄생이다.

독립된 국가의 형태를 갖추면서 수도를 투니스로 이전했다. 카르타고 시대부터 지중해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그들은 투니스도 ‘메디나’라고 불렀다. 13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300년간 전성기를 누리면서 그들은 가장 위대하고, 부유하고, 아름다운 중세 이슬람 도시를 건설했다. 물론 후대에 십자군, 오스만, 프랑스 등 외세의 침략이 있었고 많은 도시시설이 파괴, 변형됐지만, 투니스 만큼 이슬람 도시의 성격을 잘 유지하고 있는 사례도 드물다.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던 성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남북 800m, 동서 1600m 직사각형 형태의 성은 윤곽을 유지한다. 아직도 4개의 성문이 남아 구도심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사용된다. 커다란 아치 입구를 갖는 로마 개선문과 비슷하나, 오스만제국 시대의 유산이다. 아치형 입구 안으로 보이는 구도심의 풍경은 중세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을 연상시킨다.

길은 자연스럽게 시장 거리로 연결된다. 이슬람 시장(suq)의 활기와 독특한 과일, 그리고 이름모를 향신료의 진한 냄새를 온몸으로 느낀다. 청동 쟁반에 그림을 새기는 망치질 소리도 결코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수크는 가로형 상가에서 건물형 상가 안을 통과하며 이어진다. 터널형 볼트 천정에 작은 개구부를 내어 환기와 채광을 해결했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장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물담배를 즐기는 도시인들의 한가로움이 연출된다. 중심가로 변에는 관청, 학교, 궁전, 모스크 등 공공건물도 배치된다. 궁전이라고 해도 외관은 결코 위압적이거나 사치스럽지 않다.

대부분의 모스크는 오스만 시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팔각형 미나렛과 우아한 장식들이 오스만 시대의 바로크적 취향을 드러낸다. 이 중에서 지투나(Zitouna) 모스크는 오스만 시대 이전에 지어진 희귀한 사례로서, 아직도 도시의 핵을 이루는 랜드마크다. 형식은 카이루완의 우크바 모스크와 유사하게 넓은 사각형 중정과 지붕 덮은 예배실로 구성됐다. 160개의 기둥이 펼치는 기도실 내부공간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미나렛은 오스만 시대의 작품이다. 그물 무늬와 같은 기하하적 패턴으로 벽을 장식했고, 수직적 상승감은 이탈리아 중세 탑을 연상시킨다.

도시 안에는 곳곳에 옥상 카페가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1층은 대개 상점이라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1층 상점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면 마치 폐허와 같은 희한한 광경이 펼쳐진다. 적당히 무너진 벽에는 현란하기 짝이 없는 모자이크 타일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점원은 이곳이 궁전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어느 시대 누구의 궁전이었는지는 미상이다. 하지만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고급건축인 것은 분명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도시 전경을 바라본다. 수많은 문명이 교체됐지만, 이슬람 도시의 골격은 살아남았다. 돔과 미나렛이 만드는 실루엣, 깊고 폐쇄적인 중정, 실핏줄 같은 미로들, 영락없는 이슬람 도시의 모습이다. 그러나 중동 아랍 문명권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 도시와 건축과는 차이가 있다. 때로는 카르타고의 흔적과 로마의 유산, 심지어 근대 프랑스적인 요소까지 섞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굳이 원조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튀니지 문명의 혼혈적 성격이 아니겠는가.

강영화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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