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운 한여름 좁은 상가 골목길을 걷다가 에어컨 실외기에서 쏟아지는 더운 바람에 얼굴을 찌푸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관련 규제의 필요성이 공감대를 만듦에 따라, 2012년 4월 국토교통부령으로 상업지역 및 주거지역에서 건축물에 설치하는 냉방시설 및 환기시설의 배기구는 도로면으로부터 2미터 이상의 높이에 설치되어야 하며, 배기장치에서 나오는 열기는 인근 건축물의 거주자나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23조 제3항). 위반 시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 등 불이익 처분이 뒤따르는 이 입법으로 인해, 이전에는 드물었던 가림막이 설치된 실외기가 늘어나는 등 개선이 이루어져 보행환경도 그만큼 나아졌다.
당시 관련 규제의 필요성이 공론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들었던 뜻밖의 이야기는, 관련 규제가 선제적으로 신속히 이루어졌어야 마땅함에도 입법자들의 무능과 무관심 때문에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던 피해가 방치되었다는 비판이었다. 공동체의 문제를 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는 건 다행스러웠지만, 신속하다 못해 선제적인 규제를 주문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부작용이 없는 의약품이 없는 것처럼 법이 특정 행위의 준수와 금지를 강제하는 경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겨나며, 심할 경우 규제의 취지와 정반대의 사회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위해 마련된 최저임금이 임금의 하한선이 아닌 일종의 법정 임금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 2년이 무기계약직 전환의 기간 요건이 아닌 최장 고용 기간으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처럼, 법의 제정 취지와 판례의 결론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현실 세계가 전개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지난 2월, 검찰은 카카오톡 주식 리딩방이나 유튜브 주식방송을 운영하며 유료 회원이나 구독자들에게 자신의 주식 매수 사실을 숨기고 종목을 추천한 뒤, 주가가 오르면 파는 선행매매 방식으로 수익을 올린 6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지난 9일, 이들 가운데 한 명인 ‘Super K-슈퍼개미’ 유튜브 운영자 김정환에 대한 법원의 무죄 판결 선고가 있었다. 주식 보유 사실을 사전에 알렸거나, 혐의 거래 후에도 일정 기간 주식을 보유했고, 거래 권유가 일방적이거나 일괄적이지 않았으며, 피고인의 발언과 주가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기적 부정거래가 아니라는 판례의 결론은 논리와 논거 모두 이해하고 동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판례가 세상에 나오면, 법과 판례의 의도와 다른 일이 벌어진다. 주식 리딩방이나 주식방송을 업으로 하는 유사 투자자문업자들이, 이제는 면책 공고(disclaimer)를 걸어 두고 약간의 요령만 더하면 투자수익을 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유료 회원 가입비, 유튜브 방송 수익과 선행매매를 이용한 수입을 거두어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가이던스가 만들어진 것으로 판례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 금융위원회나 검찰이 막으려던 사기적 부정거래가 줄어드는 대신 불공정성과 위법성의 담장 위를 걸으며 규제 공백을 이용해 책임 없는 정보를 시장에 쏟아내는 것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돈을 버는 이들의 이러한 완고한 태도는, 알고리즘이라는 세련된 말로 편향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유튜브가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방법으로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미디어 플랫폼이 된 현실에 편승한 데 더해, 실정법이 적용되더라도 보호법익이 희생되고 혐의 거래자들의 절차권이 보호된다는 왜곡된 결과를 신봉한 데에 기인한다.
부가통신사업자로서 방송법상 광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투자 관련 사기광고와 차명거래, 일임매매, 선행매매가 자유롭게 이뤄지는 유튜브는 지금도 모두의 손 위에서 후회도, 뉘우침도, 죄의식도 없이 일하고 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였던 사상의 공개시장(the marketplace of ideas)이, 사상 대신 돈과 탐욕만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그 가치가 변질된다면, 그에 대한 보호 여부와 정도도 이제는 달리 판단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