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부득이(不得已)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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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칼럼]부득이(不得已) 단상
  • 경상일보
  • 승인 2023.11.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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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면주 변호사

일상에서 양해를 구하려는 상황이 되면 ‘부득이’라는 말을 무심코 사용한다. 한자 뜻 그대로는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을 따른다.’ 정도인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하는 수 없이’ ‘마지못해’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사실 부득이는 유가(儒家)의 선비들에 의해 의(義)를 실현하는 길목을 지키는 주요한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맹자는 <양혜왕 하편> 제선왕과의 대화에서 ‘나라의 임금이 현명한 사람을 발탁할 때에는 부득이하게 해야 합니다. (國君進賢 如不得已·국군진현 여부득이)’라고 해 부득이 인사원칙을 밝히고 있다. 즉 지도자가 사람을 발탁할 때에는 심사숙고한 결과 국민이 공감하는 의견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인사권은 인사권자의 고유한 권리이기는 하나 사사로운 정실에 얽매이는 자의적(恣意的) 인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소에 정치적으로 같은 편도 아니고 개인적인 인연도 없어 발탁하기가 주저되지만, 전문성이나 능력, 여론 등을 숙고하면 어쩔 수 없이 발탁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짐작된다.

절대적 권력자인 임금의 불의는 상소문으로 지적되었다. 상소문의 형식은 서두에 ‘이런 말을 하면 임금에게 찍혀서 삭탈관직되어 귀향살이 신세가 될 수도 있지만, 불의를 배격하고 백성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해 ‘부득이’ 상소를 올린다’라고 시작됨이 대부분이다. 17세기 중국에 기독교가 밀려 들어오면서 동서양의 가치 충돌이 시작될 때 청나라의 ‘양광선’은 반기독교 논쟁의 상소를 묶어 <부득이> 라는 제목의 책을 간했고, 이탈리아 출신의 선교사 이류사는 <부득이변>을 지어, 이에 맞선다. 지극히 심사숙고해 사사로운 이해득실을 따질 겨를없이 나아간다는 ‘부득이 정신’을 옛 선인들은 정의의 실현 방법으로 애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전제군주제하에서도 부득이하게 발탁한 인사가 부득이하게 상소를 고해 권력 내부의 소통과 정화를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 권력 내부의 소통과 자정 기능은 군주시대보다 그 실속이 떨어질 수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주로 정치적 이해관계와 사사로운 친소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지고, 영특했던 사람도 발탁되는 순간부터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권력의 앵무새로 전락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부득이 인사’는 많은 실례가 있지만 가까이는 박정희의 남덕우 발탁에서 나타난다. 서강대 경제학 교수로 지내면서 박정희 경제 정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장 많이 했던 남덕우를 눈여겨본 박정희는 1969년 재무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남 교수 그동안 정부 일에 비판을 많이 했으니 맛 좀 봐”라고 했다고 한다. 남덕우는 이후 14년 동안 현실 정치의 단맛 쓴맛을 경험하면서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초석을 다져 나갔다. 스포츠계에서도 난무하던 정실인사를 배제하고, 능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의 전설이 남아 있다.

이번에 울산시가 울산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을 정치권 인물이 아닌 현대중공업의 경영전문가인 현직 전무를 발탁해 민관이 상호 인사교류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울산시장은 “기업과의 상호 인적교류로 기업 정신을 지방정부에 이식하고 경영전문가를 통해 지방공기업 운영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 나갈 방침이다.”라며 소회를 밝히고 있고, 이사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공공부문도 효율성과 공공의 이익 추구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며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노사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그 경위와 배경이 어떠한지는 언론 보도만으로는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우선 주목할 만한 일로 보여진다.

지방정부 산하의 공기업에 대한 발탁인사는 주로 정치적 이해득실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당연시되어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울산시장의 결단이 결실을 맺어 공기업 인사의 새로운 전형으로 자리잡고, 나아가서 중앙 정부 산하의 공기업에 대해서도 ‘부득이 인사’가 확산되는 울산발 인사 혁신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 한 장 남은 달력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빠듯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야 늘 앞가림하기 바쁘지만, 나보다 더 곤궁한 이웃을 위해 조그마한 나섬이라도 주지하지 말고 ‘부득이’하는 따뜻한 세모(歲暮)가 되었으면 한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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