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교사로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 중의 하나, “영어 선생님이니까, 영어 잘하겠네요” 언제 어느 순간 이 질문을 받더라도 “물론이죠”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고 싶지만, 실상은 “아, 네…”하고 말끝을 흐리며 웃을 뿐이다. 영어를 잘한다? 영어를 듣고 읽고 쓰고 말하는 영어 구사력을 묻는 말에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자신 있게 영어를 잘 한다고 말하려니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콕 찔리는 느낌이고, 못한다고 하려니 ‘그래도, 내가 영어 교사인데…’ 하는 자존심에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 생각할 때는 나의 영어 수준이 선명하게 파악되지도 않았다. 수업 시간 중에 읽고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면 충분하다던 내 생각은, 실제로 영어 말하기와 쓰기를 다시 배우는 과정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내 생각과 감정을 큰 머뭇거림 없이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모국어를 상황과 맥락, 대상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정하며 구사하듯이 영어로도 편안히 할 수 있는가? 하는 불편한 질문으로 내가 위치한 곳을 어림잡아 볼 수 있었다.
눈으로만 봐오던 영어를 말로 하고 글로 쓰기 시작했더니, 가관이었다. 손발이 묶여버린 사람처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현이 안 됐다. 내가 틀린 영어를 하는 경험을 회피하려다 보니, 아는 단어와 표현만 사용하는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는 기초 수준의 문장 구사에만 그칠 뿐이었다. 이제 배우기 시작하면서도 나는 잘 못한다는 열등감과 두려움까지 겹쳐 배움의 속도는 더욱 느렸다. 틀려서는 안 된다는 압박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의식, 그리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극도의 부담감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마음 편히 연습하고 시도할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다.
외워서 사용하는 표현 몇 개가 아니라, 내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표현도 사용해 보고, 정확하지 않더라도 다양하게 써보는 시도를 계속 해야 실력이 늘텐데, 그 과정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배우는 과정에 있는 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유명한 광고 문구처럼 “Just do it.” 일단은 그냥 말해 보고 시도해야 하는 것인데, 그 시작이 어려웠다.
어린 시절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그저 무슨 말이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 보고 시도해 봐야 언어 습득을 위한 배움의 과정이 일어난다. 말로는 너무나 간단하고 쉽지만, 영어 교사인 나에게도 힘들게 느껴진 과정이 수능과 내신의 짐을 지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얼마나 짙은 그림자로 다가갈 지 염려된다. 발음도 틀리고 문장이 틀려도 잘했다고 손뼉 치며 응원해 주던 ‘엄마’의 역할이 영어 학습에서도 필요할 것 같다. 학생들이 일단은 영어로 천천히 말하고 읽어볼 수 있도록, 배움의 과정에 있는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가오는 새해 목표를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김건희 울산 대송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