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겨울과 연말은 마음의 모닥불을 지피기에 좋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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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겨울과 연말은 마음의 모닥불을 지피기에 좋은 시기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3.12.01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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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갯벌의 쓰레기더미에서 빈깡통이 움직인다. 가만히 보니 참집게가 고철깡통을 등에 이고 이동하는 것이다. 이 녀석은 집게발만 단단할 뿐 몸은 부드러워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으려면 딱딱한 껍데기가 집으로 필요하다. 갈수록 갯벌이 줄어들고 조개류가 남획되니 소라나 고동을 찾아 헤매도 구하지 못한 것이다. 날카롭고 무거울 뿐 제 몸통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는 깡통에 몸을 숨겨야 하니 천적으로부터 잡아 먹히는 건 시간문제이다. 지금도 사람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 다른 집을 찾고 있다. 쓰레기 청소부가 가만히 보더니 조개껍데기를 그 옆에 놓아두었다. 이를 발견한 녀석은 잽싸게 새집으로 쏙 들어가 등에 지고 힘차게 또 제 길을 간다. 더 몸이 클 때까지는 제 몸을 잘 보호하리라.

껍데기로 연약한 몸을 숨겨 방어하는 참집게를 보니 마음이 여린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 A가 14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믿었던 친구가 소문을 내 버렸다. 이 충격으로 다신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 항상 속마음은 숨긴 채 그런 척, 아닌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주고 끄덕여 주며 살아왔단다. 이렇게 얼굴에 씌운 가면에는 직위와 돈의 힘까지 더해져서 갈수록 강한 껍데기가 되어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처받지 않은 척하게 되었다. 무심히 뱉어 버리는 상대의 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상사와 동료, 갈등이 싫어서 참으니 만만하게 보며 무시하는 가족. 이 들 속에서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껍데기는 표정을 감춰주면서 그 딱딱함은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게 한다. ‘갈등 공포증’과 ‘감정표현 불능증’은 이분뿐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와 있는 현상일 것이다. 어떤 감정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라고 하였을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십 대 아이들처럼 그냥 ‘대박~’ ‘짱나(짜증)’ 이상의 자세한 표현을 못 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감정은 강력하기에 생각을 지배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밝은 기분과 감각에서 나온다. 심리실험에서 면접장의 심사위원에게 감동적이며 따스한 실화를 들려주었을 때가 안 했을 때 보다 합격자가 많았다. 심지어 차가운 음료수를 잡았을 때 보다 따스한 음료를 들고 면접할 때 더 합격자가 많았다. 이처럼 본인은 이성으로 결정하였다고 여기는 일이 사실은 감정이 결정요인이었던 경우는 많다. 나의 감정에서 나의 행복, 선택, 판단, 기억이 결정된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게 될수록 문제를 알게 된다. 나와 소통하고 상대와 교감 된다.

그렇기에 ‘대박’ ‘짜증’보다 구체적인 감정까지 구분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게 행복하고 평온해지는 것에 좋다. 작가 유선경은 저서 <감정 어휘>에서 두 개의 감정이 합친 복합형 감정을 말한다. 희망은 기대+신뢰, 부러움은 슬픔+분노, 염려는 기대+공포, 수치심은 공포+혐오, 절망은 공포+슬픔, 애증은 신뢰+혐오, 라고 하였다. 가만히 느끼고 생각해보니 정확한 분석이고 참 오묘한 우리 감정이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의 지금 느낌에 가장 적절한 감정을 찾아낸다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중 올해 어떤 감정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갔는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시 아닌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지 않으셨을지? 그렇다면 감정은 무시되어 무채색의 덩어리로 겹겹이 마음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덩어리는 알 수 없는 답답함, 공허함, 사소한 일에 짜증 나고 우울함까지 유발한다. 이제 A씨는 등에 진 방어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어휘로 표현하려 애를 쓰고 있다. 결결이 다른 감정을 ‘대박’ ‘짜증 나’로 퉁치지 말자. 한 해 동안 이리저리 밀려 쌓인 자신의 감정 덩어리를 분류해 섬세하게 감정에 이름 붙이시기를. 정확한 상태를 알게 되면 해결방법이 나온다. 막힌 관계도 소통이 될 것이다. 겨울과 연말은 감정의 불씨를 살려 마음의 모닥불을 지피기에 좋은 시기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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