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47)]겨울 등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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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47)]겨울 등산길
  • 경상일보
  • 승인 2023.12.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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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문수산 등산길에 갈비가 수북하게 쌓였다. 사철 푸른 소나무도 늦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려 몸을 가볍게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라 생각한다. 무성한 여름 잎을 달고서는 추운 계절을 지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식물도 아는 것이다. 빛이 귀한 계절에는 활동을 줄이고 영양분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생물은 없다. 이런 지혜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역동적인 생활보다는 단순하고 가볍게 살아가는 태도가 어울리는 시기가 반드시 오게 된다.

나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떨어진 낙엽은 나무를 푸르게 만드는 잎만큼이나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쓸모가 많은 존재다. 지금은 소나무 갈비가 낙엽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모두가 찾아다니는 최고의 땔감이었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지금도 소나무 아래 쌓인 갈비를 보면 아궁이 속에서 타는 맑은 불을 떠올린다. 소나무 갈비가 만들어내는 고요하고 강한 불길은 사람을 평안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도 아궁이 속에서 갈비를 태우는 것을 즐겨 했다. 마르지 않은 생솔가지를 태우면 불길보다 연기가 더 많아 눈물을 흘리며 아궁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삶도 시기마다 자연의 흐름에 맞는 역할이 있다. 노년의 시기가 가지고 있는 역할이 갈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떨어져야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이 주위를 건강하게 하는 자연의 순리다. 그리고 생솔이 가지지 못하는 열기를 마른 갈비가 가지고 있듯이 인간도 마지막까지 주위를 밝힐 힘을 기르고 찾아야 한다. 젊은 힘만으로 생애를 완성할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정을 완성하는 과정에 필요한 자세와 태도가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겨울 등산길을 걷는다. 겨울 등산길은 오르는 시간보다 내려오는 걸음 속에 더 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더러는 작은 깨달음이 찾아오기도 한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긍정적인 마음 같은 것이다. 인간이 한 생애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의미가 그리 깊지 않다는 성찰에 이르는 것도 이러한 때이다. 걸으면서 느끼는 단순한 깨달음이 책 속에서 얻는 지식보다는 더 절실한 힘이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래서 헐벗은 겨울에도 사람들은 등산길을 걷는다.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다. 한해가 끝이 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변화를 인지하는 정도는 삶의 진행 과정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직업과 같은 사회적인 역할에 모든 힘을 쏟아내는 시기에는 자신의 작은 변화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럴 여유도 없다. 삶을 지탱하는 기준이 개인적인 상황보다는 사회적인 평가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퇴와 같이 삶을 지탱하던 외부 질서가 사라지는 시기가 되면 심신이 변해가는 과정이 우리의 의식과 감정 속에서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의 흐름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한해의 마지막에 이르면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직시하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노인들의 시간이 젊은이의 시간과 다른 이유다.

12월은 하루씩 세어가며 보내는 달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어도 시간을 아끼며 보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날인 사람도 한해의 끝자락에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생애가 걸어가는 길을 다시 가늠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어떤 모양일지라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의 힘을 얻기 위해서다. 하릴없이 생각이 바빠지는 12월이지만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진솔하게 들여다볼 시간은 비워놓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 새로운 나이에 맞는 지혜가 피어나길 기다린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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