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눈에 띄는 공문이 있었다.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 고시’. 울산시교육청 승격 이후 최초의 초등학교 지역화 교육과정이었다.
솔직히 학교의 연구부장이 아닌 다음에야 국가 수준 교육과정도 총론 외에는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 없는 일반 교사가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질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울산 최초의 초등학교 교육과정이라니,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에서나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반 호기심 반으로 파일을 열어봤다. 고시, 시행 등의 딱딱한 글자들로 시작하길래 얼른 다음 장으로 넘겨보니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성격이 보였다. 그리고 아주 인상 깊었던 첫 문장.
가. 학교는 이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지역과 학교의 실정에 맞게 학교의 교육과정을 설계·운영하고,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확대한다.
이 문장을 본 순간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만들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는 몇해 전 태화강과 넓은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는 중구의 한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늦가을 초입인 10월 말이 되면 저녁 노을을 받아 바람에 일렁이는 금색 억새밭이 근사해 즐거운 퇴근길의 행복이 배가 되던 시절이었다.
억새밭이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는 생생한 교육 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태화강과 억새밭을 활용한 탄소중립 교육을 학교의 중점 과제로 설정해 프로젝트 학습, 생태 탐방, 환경 보호 챌린지 등의 생태환경교육을 계획했다.
학교 주변의 특색있는 교육 자원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생생한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지도 모르고 선생님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 학교 교육과정이 국가 교육과정이나 울산시교육청의 지침을 위배하는 부분은 없는지, 단위 학교에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수없이 고민하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 항목처럼 이제 이러한 불안을 덜어내고 학교의 자율성을 발휘해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현장의 교사로서 필자가 본 이번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제Ⅲ장 울산시 초등학교 학교 교육과정 반영 사항과 제Ⅴ장 울산시 초등학교 교과·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이다.
제Ⅲ장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사항을 반영해 ‘초등 배움성장 집중학년제’ ‘체육예술교육’ 등 울산교육과 울산 초등교육의 특징을 9개 영역별로 잘 녹여내고 있었다.
제Ⅴ장은 각 교과에 해당하는 울산 교수·학습의 중점이 제시돼 교과 수업에 바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2025학년도 초등 3~4학년부터 적용되는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의 핵심인 ‘학교자율시간’ 적용에 대비해 지역과 연계하거나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미리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학교자율시간 구성·절차에 관한 방안도 상세히 안내해 막막함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이야기하지만, 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하는데 실제로 전문성이 얼마나 보장돼왔고 또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가 얼마만큼 주어졌던가. 하지만 이제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있기에 교사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으리라.
울산 초등학교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첫걸음 연수, 포럼, 토론회, 통합 설문조사, 공청회, 현장 검토본 배부 등이 초등 교육구성원이 참여하는 상향식 울산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울산 초등교육에 헌신하는 모든 교사가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알고 부단한 자기 연찬의 기회로 삼길 바란다. 또한 울산시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교육 현장 곳곳에, 교육 철학 사이사이에 천천히 그리고 깊이 녹아들기를 기대한다.
이미영 화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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