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52)]친구인듯 적인듯 프레너미(Fre+nemy): 드러난 적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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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52)]친구인듯 적인듯 프레너미(Fre+nemy): 드러난 적보다 무섭다
  • 경상일보
  • 승인 2023.12.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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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얼마 전 ‘외교의 황제’ ‘탈냉전의 설계자’로 불린 미국 외교가 헨리 키신저가 별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게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America has no permanent friends or enemies, only interests).” 이 노련한 외교전문가는 우리에게 국제사회의 냉엄함과 동시에 인간 본성의 이중성을 알려주었다.

이 명언과 궤도를 같이하는 직장인들의 표현이 있다면, 영어 신조어 ‘프레너미’이다. 이 단어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앞뒤를 잘라 만든 혼성어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수시로 부딪히는 문제의 핵심을 잘 표현한 일종의 ‘문화어’이다. 친구와 적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을 혼합해 한 단어로 만들어 내었다. 이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이중성과 복합성을 잘 드러낸다.

‘프레너미‘는 현대사회나 현대인을 통상 대립개념인 사랑과 증오 또는 선과 악의 이분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라는 점을 암시한다. 오히려 한 국가나 한 사람의 내부에 선과 악의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표현은 직장생활에서 대개 부정적 의미로 ‘친구인 척하는데 사실은 적’인 동료나 선후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2022년 BBC의 롭슨(David Robson)에 따르면, 우리는 회사 구성원을 크게 진실한 동료들과 원수같은 동료들로 쉽게 나눈다. 진실한 친구들은 우리 건강과 행복에 엄청난 편익을 주지만, 부정적 동료들은 이와 반대로 다른 동료나 가족구성원을 이유없이 힘들게 해 아주 해롭고 심지어 사망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어려운 문제는 진정한 친구들과 철천지원수의 중간에 있는 양면적(ambivalent) 동료들 때문에 직장생활이 더욱 힘들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간자들은 나의 비통한 일에 동정적으로 경청해주지만 돌아가서는 뒤에서 험담을 한다. 또 다른 이가 날 비난할 때, 나를 옹호하다가도 공동 프로젝트의 공로를 혼자 독차지해버린다.

이들은 조력자이면서 또한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우리는 ‘프레너미’라 부르고 심리학적으로 양가적 관계(ambivalent relationship)에 있다고 말한다. 종종 친구인 듯한 이들은 드러난 적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드러난 적보다 우리에게 더 큰 스트레스를 주며 무방비 상태에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권고한다.

트래버스(Mark Travers)는 프레너미의 특징을 3가지로 본다. 지나친 경쟁의식, 극심한 질투심, 상대방 불신감 등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우정과 인성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힘과 상황논리로 판단한다. 필요하면 우리는 깐부라고 했다가 불필요하면 친구를 쉽게 버린다. 친구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작가 코퍼(Christine Coppa)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이 위험한 친구 ‘프레너미’의 징후를 발견하라고 우리에게 귀띔한다. 첫째, 그는 새차, 새로 칠한 침실을 칭찬할 때에도 단서를 꼭 붙인다. 둘째, 그는 전화를 잘 하지 않고, 밖으로 당신을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셋째, 그는 당신의 경력이나 성과를 깎아내린다. 넷째, 그는 당신의 옛 애인과 시시덕거린다.(상당히 미국적인 상황!) 다섯째, 여성이라면, 전업주부 친구의 집안일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질투심이 발동한 것이다. 여섯째, 그는 당신의 위기와 불행을 즐긴다. 위로하기보다는. 일곱째, 그는 운동친구일 때도 우정어린 경쟁보다 항상 당신보다 조금이라도 이기려고 애쓴다.

일년을 마감하는 12월에 가정에서, 회사에서, 공직에서 혹시 나는 어떠한 동료였을까?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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