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천변 가로수 아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니, 학창시절 누구나 들어봤을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잠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고 아련해 지지만, 이내 사라진다. 낙엽 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 “까악 까악~” 하며 인사를 건네는 까마귀 떼가 산책길 내내 동행하며 타향살이의 헛헛함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적인 흉조로 여겨지지만, 내겐 그지없이 반갑고 정겹기까지 하다. 출근 길에 삶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길조이자 동반자라는 생각이 든다. 울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힘겹고 팍팍한 삶에 기댈 언덕이나 믿을만한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 같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코로나19로 침체에 빠진 내수촉진을 위해 전국단위 ‘동행축제’를 추진해 오고 있다. 금년에는 5월 봄빛축제, 9월 황금녘축제, 12월 눈꽃축제 등 총 3회를 개최했다. 축제기간에는 국내 주요 온·오프라인 쇼핑몰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참여했다. 특히, 금년도는 지역축제 연계 개최로 당초 목표액인 3조원을 초과 달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제 ‘동행축제’는 내수살리기의 대표적 브랜드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판매전과 바자회 등으로 마련된 성금과 물품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는 온기나눔도 병행해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울산에서도 지역축제와 접목한 동행축제를 개최했다. 5월에는 고래축제, 9월에는 ‘전통시장 우수시장 전시회’ 등과 협업해 지역의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및 청년상인들에게 제품 판매와 홍보기회를 제공했다. 성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총 5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서 참여한 상인들의 시름을 덜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성과는 여러사람들의 합작품이다. 지난 9월 동행축제에는 전날까지 비가 내려서 양수기, 양동이, 삽 등으로 밤새 배수를 하고 방수포로 물을 제거해서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도 했다. 5월 동행축제에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태화시장을 방문해 김두겸 시장 등과 함께 찍은 흥챌린지 춤영상이 SNS에 확산되어 힘을 보태기도 했다. 또한, 지역 주류업체에서 소주 100만병 라벨에 동행축제 문구를 인쇄해 홍보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었다. 이 외에도 행사준비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도와준 기관과 관계자들의 협조와 협업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판매전에 참가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청년상인, 고객들은 행사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면서도 부분적으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상인들 대부분 동행축제가 다른 유명 축제행사에 참가할 때보다 훨씬 높은 매출로 이어져서 아주 좋았다 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단골고객을 만들고, 신제품 반응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팝업스토어 역할도 해서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참가 가능한 지역축제 행사가 일부로 한정되고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꼽았다. 고객들도 식수·화장실 등 부대시설과 먹거리·즐길거리 부족을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다. 내년 동행축제 행사추진 시에는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서 더욱 세심하게 준비할 계획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기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와 세계적인 경기불황의 늪에 허우적대고 있다. 심각한 내수부진에 더해 코로나 재확산 우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으로 인해 소비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어 있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상존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온누리상품권 발행과 유통을 확대하고 전통시장 수산물 할인행사(수산대전)를 연말까지 상시 적용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김사인 시인의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이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서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복합적 경제위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내 앞만 바라보며 달음질하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주위를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모두가 힘들지만, 우리경제의 모세혈관인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더 많은 발걸음이 그들에게로 향했으면 한다. 내년에도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이 합력하여 함성(함께 성장) 소리 울려 퍼지는 동행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종택 울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