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48)]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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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48)]마음을 먹는다
  • 경상일보
  • 승인 2024.01.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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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마음을 먹어야 하는 시기다.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마음을 다시 먹는다. 큰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도 그렇고 지금까지 해오던 습관을 버리려는 사람도 모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새롭게 마음을 먹는다. 심지어 번잡한 생각을 멈추고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자신을 다잡기 위해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은 자신의 의지나 결정이 다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렬한 열망을 나타낸다. 무엇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그 체험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길은 그것을 먹어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먹는다는 경험을 마음에도 적용하여 이러한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먹는 일은 인간의 감각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다. 배가 고플 때 한 그릇의 국밥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하루도 음식을 입 속에서 경험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육신이 쇠약해지는 노년이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감각은 무엇을 먹고 싶다는 욕구다.

인간이 느끼는 허기는 지극히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허기나 욕망도 있다. 생존에 필요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강한 자극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먹는 사람도 수없이 많다. 술을 먹는 사람도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먹지만 그런 허기가 생존에 꼭 필요한 욕구인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고통을 잊기 위해서 먹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즐거운 기분을 돋우기 위해서 마신다고도 한다. 심지어 인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서 먹는다고도 한다. 한 잔의 술이 말보다 깊은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술에 관대한 편이다. 어느 식당에서나 도수 높은 술을 판매한다. 점심을 먹으면서 독주를 마실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다. 그만큼 삶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팍팍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처럼 장소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술을 먹을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의 노숙자들도 술병은 종이로 가리고 먹는 것을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가치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경험을 얻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추구하는 경험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르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경험을 얻기 위해 평생을 수련하는 사람도 있지만 강한 자극이 동반되는 경험을 끊임없이 찾아다니기도 한다. 모주꾼들이 매일 술을 마시는 까닭이기도 하다. 건강을 해치더라도 버리기 힘든 강렬한 체험을 동반하는 것이 술이다. 그래서 술을 마약으로 지정한 나라도 많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술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상으로부터 더 멀리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은 술 속에 약을 섞어 마신다고 한다. 세속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마약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 짐작할 수도 없다. 약이 만드는 가상의 세상 속으로 가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일상을 벗어나는 도취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에서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모든 종교는 말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일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신성한 경험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종교도 있다. 예수도 열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나누었다. 먹는 일의 소중함을 은유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험은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 삶의 의미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해부터는 한 그릇의 밥을 먹으면서 느끼는 체험 속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기로 마음을 굳게 먹는다. 먹는 일의 엄숙함을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가짜 허기로부터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다. 술도 그중의 하나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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