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과장과 허위에 대한 경계(警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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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과장과 허위에 대한 경계(警戒)
  • 경상일보
  • 승인 2024.01.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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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1등 하는 아이보다 어중간하게 잘하는 아이가 더 많이 아는 척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최우등으로 졸업한 친구의 겸손은 지금도 기분 좋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행동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대개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조금 더 포장하고 과장하는 것을 능력 있다거나 상식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발생하는, 가지거나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포장하거나 아예 다르게 나타내는 지재권 특히 상표 사례에 대해 나열해 보았다.

최근 특허청은 건강식품 분야 전반에 대해 지식재산권 허위표시를 집중 단속한 결과(지난해 8월11일~9월20일) 허위표시 사례를 503건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적발된 허위표시 유형을 살펴보면, 권리가 소멸한 이후에도 유효한 권리로 표시한 경우가 430건으로 제일 많았다고 한다. 이 경우는 소멸 전 표시했다거나 소멸한 사실에 대해 무신경했다거나 하는 등등의 갖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허위표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상표에 한정한다면, 허위표시란 등록, 출원을 하지 아니한 상표를 등록상표, 출원상표인 것같이 상품에 표시하거나 광고 등을 하는 행위 또는 등록받지 않은 상품에 표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특허나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상표는 수요자의 구매 요인이 되는 중요한 수단이고 그것이 독점적 권리로 만들어진 것이 상표권인데 마치 권리 있는 것처럼 속인다면 이는 중대한 범죄행위인 것이다. 우리 법은 품질을 오인하게 하거나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는 상표의 사용과 등록을 금지하고 있다. 즉 근본적으로 그런 상표의 사용과 독점이 금지되는 것인데, 후발적으로 수요자를 헷갈리게 하는 것도 금지된다는 의미이다.

한편, 지난달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버터를 원재료로 사용하지 않는데도 버터를 뜻하는 프랑스어 ‘뵈르(BEURRE)’를 제품에 표시한 사례에 대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품목제조정지 처분을 내렸다. ‘바나나맛 우유’처럼 합성향료만 사용했을 때는 ‘XX맛 맥주 또는 XX향 맥주’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사는 “곰표 맥주에도 곰은 없다”며 과도한 처분이라고 하고 있다. 나아가 서울행정법원에 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해 소송전에 들어갔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곰표 맥주에 곰이 없으며, 고래밥은 고래의 밥이 아니다”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버터 맥주에는 버터가 들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므로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다만 불어인 ‘뵈르’를 우리가 널리 아는 ‘버터’로 인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버터맥주’가 아닌 ‘뵈르맥주’에 버터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식약처의 처분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절충적으로 ‘버터는 없다’라고 표시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런 선례를 남긴다면 이를 이용하려는 자가 생길 것으로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길을 가다 보면 XX학문외과, XX창문외과라고 표기된 병원 간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부터 항문외과 등의 표기가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허용되지 않던 시기에 규제를 회피하고자 우회책으로 만들어진 상호, 간판들이다. 이유야 있겠지만 딱히 정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최근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국회의원 정식후보가 되기 전 예비후보등록을 하고 사진과 게시물을 크게 거는 경우가 있는데, ‘예비’라는 글자는 왜 그리 작은지 유심히 보지 않은 이상 그냥 ‘국회의원 후보’가 돼버리는 것이 그것이다.

누구든 가진 것 이상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과장’은 때로는 ‘허위’ 만큼이나 나쁜 것일 때가 있다. 최근 들어 만연하고 있는 SNS에서의 보여주기식 성향은 모쪼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는 거품을 벗겨내고 포장지로 싸지 않은 보다 아름다운 날것의 세상을 기대해 본다.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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