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가 대 유행이다. 치료를 받으러 내과를 찾으니 대기 환자가 엄청나다. 서너 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지역의 각 급 병원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의사가 부족한 건 맞는 것 같다. 때문인지 의대 정원 확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실무에서 부족함이 보이니 확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이런 요구를 막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다. 증원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런 증원은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인력배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문득, 과거 변호사 수 확충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때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하지만,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단순히 증원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는 의사라고 하면 무조건 전문의를 생각하는데 과연 모든 의사가 전문의일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감기약을 처방받는데 과연 전문의가 있어야 하는 걸까? 비염을 치료하는데 반드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필요한 걸까? 의사 자격만을 취득해도 충분히 효과적 대응이 가능한 게 아닐까? 소수의 전문의보다 충분한 일반의사가 필요한 건 아닐까? 비단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업계에서도 ‘전문’을 찾는 고객들이 많으나, 솔직히 변호사 중에 이혼 사건 처리 못하는 변호사, 단순 폭행사건 처리 못하는 변호사가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가사전문 변호사’를 찾고 ‘형사전문 변호사’를 찾는다.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문득 우리 사회가 불필요한 고스펙 전문가 양성에만 집중해왔다는 반성이 든다. 고스펙 전문가는 자연스럽게 교육기간이 길어지고 교육비용이 늘어나며 이는 사회 전체의 부담이 된다.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으로 사회적 소모가 심해지는 것이다. 전문이 필요한 부분에는 당연히 전문이 투입되어야 하나, 전문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는 ‘일반’만으로도 충분하다. ‘전문’과 ‘일반’을 잘 구별하여 인력을 양성하고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교육 문제에도 같은 고민을 해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어려운 수학문제로 고생했던 기억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수학을 참 어려워했다. 그런데, 수학 성적을 잘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갔지만, 거기까지이다. 이후 수학을 대할 일이 없고, 어렵게 고생하며 젊음을 투자했던 수학 실력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수학공부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투입한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비효율적 고비용 구조일 수 있다는 반성이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고등학교 때 사회에 나와서 피할 수 없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임대차, 계약 이런 개념을 공부했더라면, 음악 미술 체육과 생각하고 성찰하며 판단하는 힘을 더 많이 공부했더라면,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학습의 기회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고대 그리스 아테네 등에서는 체육과 철학공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철학은 사람의 인격과 판단력, 창의력과 직결되는 것이니 사회에 나왔을 때 반드시 활용할 수 밖에 없고 가장 중요한 학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학공부에 매진한다.
이 모든 것이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성찰과 기존 제도와 환경에 대한 파괴의 시도이다. 그리고 그런 성찰은 변화와 발전적 개혁으로 새로운 창조의 바탕이 될 것이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우리 각자의 영역에서 ‘창의적 발전을 위한 파괴’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것, 그리고 현재 군림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개인과 사회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며 창의적 발전을 위해 오늘 무엇을 파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것이 발전과 혁신을 위한 첫 시작이다.
김상욱 법무법인 더정성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