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9)]톨레도(Toledo): 혼합, 복합,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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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9)]톨레도(Toledo): 혼합, 복합, 융합
  • 경상일보
  • 승인 2024.01.1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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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대서양까지 진출한 이슬람군은 거침없이 지브로올터 해협을 건넜다. 7세기 중반 아라비아 반도를 떠난지 불과 몇 십년 만의 일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그들은 파죽지세로 서고트 인들을 몰아내며 북진했다. 기독교인들이었던 서고트족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지역으로 패퇴해야 했다. 바야흐로 유럽 대륙이 이슬람 세력의 수중으로 넘어갈 역사적 전환기였다.

기세등등하게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 땅까지 쳐들어갔던 이슬람군은 뜻밖에 732년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샤를마뉴 대제에게 패하며 밀리기 시작했다. 승기를 잡은 유럽의 기독교 군대는 이슬람군을 남쪽으로 몰아세우며,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부터 차례로 빼앗긴 땅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이를 기독교권에서는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슬람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이미 정복한 땅에 도시와 국가를 세우고 정착해 있었고, 강력한 방어 기반을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베리아반도에서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가 아프리카로 패퇴한 15세기까지 무려 700년 이상 동안 그들은 오늘날의 스페인 땅에 정착하며 이슬람 문명을 이식했다. 스페인에서 서부유럽과 다른 혼혈적 문명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역사적 과정에서 비롯된다.

▲ 톨레도는 유럽의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의 충돌과 각축이 벌어진 중심기지 였다. 유럽과 중동,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문명이 융합돼 복합적 경관을 보여준다. 톨레도 전경.
▲ 톨레도는 유럽의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 간의 충돌과 각축이 벌어진 중심기지 였다. 유럽과 중동,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문명이 융합돼 복합적 경관을 보여준다. 톨레도 전경.

톨레도는 양대 세력 간의 충돌과 각축이 벌어졌던 중심기지에 해당한다. 타호강이 세르반테스 언덕을 둘러싸고 깊은 계곡을 형성한 톨레도는 이미 로마시대부터 천혜의 요새지로 개발된 곳이다. 5세기 초에는 게르만족이 진출하여 서고트 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8세기 초에 북상하는 이슬람군이 정복하면서 북진을 위한 전초기지가 되었다. 기독교군의 반격으로 11세기 초 카스티야의 수도로 재편입되기까지, 무려 300년 이상 이슬람 문명이 지배했던 곳이다,

톨레도에 정착한 이슬람인들은 당시에 고도로 발전했던 선진문명을 이베리아 반도에 이식했다. 그들은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전수받은 천문학, 의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을 발전시켰다. 비록 종교적 이념을 내세운 정복 전쟁이었지만, 이교도에게도 종교적 자유를 폭넓게 허용했다. 이는 톨레도가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춘 국제도시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유럽과 중동,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문명의 융합 기반이 갖추어졌던 셈이다.

도시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유럽의 중세 도시와 큰 차이를 느낄수 없을 것이다. 가로 경관은 고딕이나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유럽 고전양식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하나 하나의 건축물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서구 고전양식과 다른 독특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이국적 양념으로 버무려진 토속 음식처럼 독특한 풍미를 갖는다. 어쩌면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톨레도를 감상하는 출발점이 될 터이다.

도시로 들어서기에 앞서 건너편 언덕에서 톨레도를 바라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깊게 협곡을 이룬 타호강이 천연 해자를 이루고, 세르반테스 언덕 위에 층층이 쌓인 도시 전경을 파노라마로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동 하회마을을 부용대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장쾌하고 아름다운 도시경관이다. 물론 아씨시나 시에나 같은 이탈리아의 중세 도시들도 파노라마 조망을 보여주지만, 톨레도만큼 장쾌한 스케일에는 못 미친다.

도시로 진입하기 위해 반대편에 있는 성문으로 향한다. 황토빛 성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중세 성벽이다. 하지만 이마저 특정한 시대의 유적이 아니다. 성벽 아랫단 일부는 로마시대에 쌓은 구조물이 잔존한다. 중간 단은 이슬람 시대에 쌓은 것이며, 최상단은 기독교 카스티야 왕국시대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일반인에게는 시대적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일체화되어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다.

중심 가로변에는 다양한 시대와 문명의 흔적들이 전시장처럼 복합적 경관을 이룬다. 대체로 중세 유럽의 양식이 주류를 이루지만, 바브 알 마르둠 모스크(Mezquita Bab al-Mardum)처럼 10세기에 건립된 이슬람 사원도 있다. 물론 현재는 크리스토 델라루스 성당으로 용도가 바뀌였지만, 모스크 건축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카스티야 지방에서 가장 잘 보존된 이슬람 시대의 건축이다. 외관은 블라인드 아치와 말굽형 아치, 다엽형 아치 등으로 이슬람 건축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4개의 내부 기둥을 이용해 9개의 격자형으로 구획된 천정에는 각기 특징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현란하다.

톨레도의 랜드마크로는 톨레도 대성당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7세기 서고트 왕국시대에 창건된 기독교 성당이다. 하지만 변화무쌍했던 역사와 더불어 증, 개축과 변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슬람 시대에는 모스크로 개축되어 본당 내부에는 일부 기둥에 모스크 건축 요소가 남아있다. 11세기에는 기독교 세력이 재정복하면서 교회로 다시 개축되었다. 현 건축의 주요 양식은 13세기의 고딕이지만, 16세기 확장공사에서 사용된 르네상스 양식도 섞여 있다.

성당은 정면 파사드부터 남다르다. 한쪽은 무데하르 양식의 영향을 받은 92m 높이의 고딕식 탑이고, 한쪽은 돔 지붕을 갖는 르네상스식 탑이다. 원래는 양쪽이 같은 모습으로 대칭을 이루려 했으나, 한쪽 지반에 허약해 높이를 낮추고 다른 양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형태와 양식을 천연덕스럽게 혼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체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당 안은 더욱 가관이다. 다발 기둥, 리브 볼트 천정, 장미창 등 고딕양식의 요소가 주류를 이루지만 결코 엄숙하고 무뚝뚝한 공간이 아니다. 시선을 강하게 잡아끄는 요소는 아일부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제단(El Transparente)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섬세한 조각으로 뒤덮은 이 제단. 현란함에 있어서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발다키노에 필적한다. 중앙 예배당의 제단화(Retable) 또한 경악스러울 만큼 화려한 장관이다. 그것은 양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또는 융합적 예술이라 하겠다. 다른 민족, 다른 종교와 문명이 혼재하면서 공존했던 역사적 과정에서 그 유래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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