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새해, 그리고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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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새해, 그리고 독감
  • 경상일보
  • 승인 2024.01.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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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이번 겨울에는 독감환자들이 지난 겨울들보다 훨씬 많다.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은 폐렴 적정성 평가에서 울산 전체 종합병원 중 유일한 100점의 1등급을 받은 병원인만큼 더더욱 많이 찾고 계신다. 증상은 경증부터 중증까지 다양하지만 환자 수 자체는 그 이전 어느때보다도 많다. 판데믹이 오기 전과 비교해도 6배 가량이라는 기사를 봤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 전국의 선별진료소 운영이 종료되었다. 이제 독감 및 코로나 검사를 더 이상 병원 외부에서 진행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1~2년전 유행 당시에도 울산병원이 남구 지역의 유일한 PCR 검사 자체 분석 가능 병원이었기에, 아침마다 검사 받으러 선별진료소 앞으로 주욱 늘어선 인파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별진료소 종료는 판데믹 상황 종식 선언이고 기쁜 일이지만, 현재 코로나를 비롯해 독감 등 호흡기 감염병 질환 환자는 너무나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왜 이럴까?

정확한 원인을 딱 집어 말하기엔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래도 나름 몇가지 생각해보면, 먼저 판데믹 이후 마스크를 벗고 맞이하는 첫 번째 겨울인 점도 영향이 있어 보인다. 그동안 의무적으로 썼지만 이젠 그렇지 않으니 전반적으로 호흡기 감염병에 취약한 환경인건 맞다. 마스크를 쓰던 기간이 길었기에 사람들, 특히 소아들 같은 경우 자연면역력이 떨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독감 및 호흡기 질환 자체가 다양해진 것도 원인이자 특징이다. 보통 독감이 유행하더라도 A형 독감 두 타입과 B형 독감 중 한두개가 오거나 아님 순차적으로 유행하는데 이번 겨울은 모든 게 혼합되어 있고 재확진도 잦다. 예를 들어 한번 H1N1 바이러스 A형 독감에 걸렸다가 낫고 얼마 안되어서 또 H3N2 바이러스 A형 독감에 걸리는 등 타 독감 바이러스에 바로 확진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또 코로나에 재감염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게 전반적인 면역력 저하로 인해 일어난 일인지, 호흡기 질환 자체의 패턴이 변한건지 아직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독감 백신은 매년 만들어지는게 조금씩 다르다. 매년 어떤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만들지 범세계적으로 정해 제조하기에 그 예측이나 수요가 어긋나면 예상외로 크게 유행하기도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 그런건지도 역시 명확치 않다.

독감이 아닌 코로나 환자도 아직 많이 발생한다. 코로나19는 이제 더 이상 1급 감염병이 아니지만 병이 일으키는 데미지가 작은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호흡기 질환 환자는 너무나도 많고 동네의원에 수액이 모자란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심한 폐렴으로 진행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도 꽤 많기에 병원 내 격리실들도 모자라다 싶을 정도로 가동 중이며, 이게 올 겨울에만 한정되는 일인지도 알 수가 없다. 너무 앞서가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일부에선 앞으로 코로나 같은 한가지 치명적 질병이 확 터지는 판데믹보다 여러종류의 호흡기 감염병이 한꺼번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유행하는 멀티데믹(multidemic) 현상을 조심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니 다양한 종류의 호흡기 질환들이 이미 유행 중이기에, 현재의 겨울상황을 그렇게 부른다해도 딱히 과한 말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부에서는 판데믹 상황을 대비한 긴급치료병상을 전국의 지역병원들과 의논해 마련 중이다.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도 신청했는데 전국의 신청병원들이 정부의 통제 아래 일괄적으로 설계 및 시공을 하게 될 예정이라 예상으론 1년여에 걸쳐 신중히 만들어지게 된다. 원래는 신종 감염병을 대비해 추진되었지만, 현재의 추이를 보건데 그런 감염병이 생기지 않더라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같이 여러 종류의 호흡기 감염병들이 종합적으로 유행하는 상황이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도 무시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2024년의 1월은, 지난 몇 년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준 생활 속 호흡기질환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끝이라는게 있을까. 이미 일상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병원업에 종사하는 필자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연초부터 숙제가 생긴 것이다. 모두 합심해 풀어나갈 일만 남아있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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