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78)]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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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78)]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4.02.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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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잘 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고 듣는 말이다. ‘나는 너에 대해서 잘 아는데…’ ‘그것에 관해서는 내가 잘 아는데’, 그런데 저렇게 말하는 사람은 진실로 잘 알고서 하는 말일까. 장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知者不言),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言者不知)’라고 했다. <장자> 천도(天道)편 마지막에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는데 당하에 있던 윤편이 수레바퀴를 깎다가 환공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어떤 거냐고 물었다. 환공이 성인(聖人)의 말씀이라고 하자 윤편은 그 책은 ‘고인조백(故人糟魄)’, 즉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환공이 화가 나서 윤편의 주장에 적절한 설명이 없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거라고 협박했다.

이에 윤편은 수레바퀴 깎는 자기의 일에 비춰 설명했다. 가령 수레바퀴를 너무 깎아 헐거워지면 바퀴가 견고하지 못하고, 덜 깎아 빡빡해지면 바퀴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바퀴를 깎는 게 수레바퀴 깎는 기술의 정수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손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감응할 뿐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다고 했다. 윤편은 잘 알기도 어렵지만 아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같은 말이 노자 <도덕경> 56장에 나온다. 그런데 ‘아는 사람’을 뜻하는 ‘知者’ 대신 초나라 죽간이나 마왕퇴 백서, 북경대 한간 도덕경 등에는 일관되게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는 ‘智者’로 표기되어 있다. 智者로 해석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않다’이다. 알기도 어렵고 아는 것을 말로 표기하기는 더 어렵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다.

지금부터라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자. 그것이 우리를 지혜롭게 해줄 것이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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