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밥상의 풍경
상태바
[경상시론]밥상의 풍경
  • 경상일보
  • 승인 2024.02.05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식사란 일상에서 중요한 것이다. 안부 인사로 ‘식사하셨냐?’ 는 말을 오늘도 들으셨을 것이다.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에게도 명절과 기일에 열을 맞춰서 정성을 들여 제사상을 올린다. ‘밥 한 끼 하자’는 인사는 단지 밥만 먹자는 게 아니다. 만나서 ‘이바구’하고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면 우린 가짓수가 적든 많든 먹거리를 한 상에 다 차려 놓고 먹는다. 서구인은 하나씩 차례대로 나오니 한두 시간 걸리는 것에 비하면 우린 급히 먹는 편이다. OECD 국가로 올라서기까지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드물 정도로 우린 일만 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끼니를 ‘때워오던’ 우리의 식사 추세가 달라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젊은이들 주축으로 달라지는 현상의 첫째는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는 ‘나만의 정찬’ 만들기이다. 배달음식으로 혼밥을 해도 전체, 주식, 후식으로 챙겨 먹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둘째는 음식에 도전하는 현상이다. 줄을 서서 한 시간을 기다려 미션을 하듯이 식사하고 의미를 두는 것은 이제 흔한 모습이 되었다. 셋째로 많은 이들이 한 끼의 식사를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마치 최근 MBTI가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는 좋은 수단으로 유행을 타고 있듯이. 특정 음식에 진심이고, SNS에 올려 공유하고 연대한다. ‘맵치광’은 매운 맛에 열광하는 자신을 표현하는 용어이고, ‘맵찔이’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이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외식트렌드를 보며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생각난다. 음식과 관계의 문제이다. 식사는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 관계를 치유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식사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관계의 친밀도를 알 수 있다. 연애 시절에는 마치 서로를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뜨겁고 달콤하였다. 결혼 후 콩깍지는 벗겨지고 쌓여진 갈등을 풀지 않고 관계를 가꾸지 않는 부부는 식사 온도가 차갑다. 이젠 식사를 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화도 거의 없으며 식탁의 노란 등불도 꺼진 커플이 있을 것이다. 관계를 회복하려 할 때는 두 사람의 식사를 따스하고 다정하게 바꾸어 볼 일이다. 자신들의 추억이 깃든 식당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다시 먹어보는 행위는 다시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이건 성공의 가능성이 크다. 마음에 이르는 길은 위장을 경유하기 때문이다. 추억과 정성이 뿌려진 식사가 맛있어 위장이 즐거우면 마음도 풀어지며 두 사람의 대화는 농익고 눈빛은 다시 따스해진다.

어릴 적 가족의 밥상 위에 놓여있던 당신의 추억은 어떤 것인가? 아침에는 신문을 든 아버지가 계셨고 잠이 덜 깬 우리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던 어머니가 바빴다. 저녁 식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리다 다투기도 하고, 가운데 놓인 김치찌개의 국물을 같이 떠먹지 않았던가. 그 빛바랜 추억은 그리움으로 가슴에 머물고 있다. 그곳은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졌던 시간이었고 정을 나누고 관계를 배웠던 공간이었다. 우린 같이 떠먹는 찌개와 국이 있는 국물 문화의 백성이니 식사는 우리가 정을 마셨던 기억이다. ‘국물도 없어’ 라는 욕이 야박하고 인정머리 없다는 뜻인 걸 보면 그렇다.

한 끼 식사에 자신을 표현하고, 수고한 자신을 정성껏 대접하는 추세다. 너무 나만 생각하지 말자.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에 정성을 기울여 보자. 평소 검소하게 먹는 우리가 아닌가. 때론 특식으로 갈등을 국물에 녹여보며 정을 주고 화해를 먹어보자. 서로 힘들 때 내가 할 말만 하는 것보다 상대의 가슴속에 쌓아둔 말이 무엇일지 살펴보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 관계는 좋아진다. 사장이 근로자에 따스한 국을 퍼주며 같은 눈높이에서 경청하고, 여당 대표가 야당 대표를 식사에 초청해 국물을 같이 떠먹으며 낮은 자세로 해묵은 갈등을 풀어보는 밥상의 풍경도 기대해 본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