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 칼럼]지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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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 칼럼]지휘 책임
  • 경상일보
  • 승인 2024.02.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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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면주 변호사

설날이 코앞이다. 단기 4357년 정월 초하루. 갑진년(甲辰年)이 진짜로 시작되는 날이다. 기다려지던 설빔도 없어지고, 한복 대신 패딩이 자리를 잡았으며, 대면 세배는 손가락 인사로 대체되었고, 명절 제사는 생략하는 집안이 늘어나는 등 껍데기만 남은 설날이지만 고향과 부모를 찾는 행렬은 숙명처럼 여전하다. 사실 설날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최고의 명절이었지만 메이지 유신으로 일찌감치 양력을 받아들인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해방 후의 이중과세 금지정책의 수모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들불처럼 살아남아 왔다. 결국 정부도 민초의 열망을 이기지 못하고 1989년부터 설날은 3일 연휴의 공식적인 명절로 지정했다. 민족의 영혼이 깃든 명절인 셈이다.

시절이 어려워도 세밑에는 설레고 들뜨기 마련인데 올해는 금쪽같은 자식을 하늘로 보낸 부모들이 가까이 있어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다. 문경 화재현장에서 젊은 소방관 2명이 인명 구조를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들어 산화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화마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아무리 훈련받은 전문 소방관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범인(凡人)들과는 다른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수류탄과 실탄을 소지한 무장 탈영병이 가지산으로 숨어들자, 특공여단 병사들을 투입하는 매복·포위작전의 현장에 군검찰관 시절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가장 용감하고 잘 훈련되었다는 특공여단 병사들도 실전에서는 지휘관의 고개 들고 정면을 응시하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두 머리를 파묻고 총만 정면으로 조준할 뿐이었다. 자신의 생명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소방관의 화재 현장에서의 순직은 해마다 일어나고 그때마다 관계 당국은 앞으로의 철저한 대책을 호언하지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현장을 방문한 양당 대표는 “급여를 올리겠다” “화재 진압 특수 로봇을 개발해 투입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밝히고 있지만, 참으로 성의가 없어 보인다. 급여를 올린다고 현장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이라도 화재가 나면 또 불길 속에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언제 로봇을 개발해 투입한단 말인가.

소방관의 안전에 대한 매뉴얼은 있는지. 매뉴얼이 현장에서 철저히 지켜지는지. 지켜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상호 안전을 보장할 만한 인원과 장비는 충분한지. 화재의 신속한 진압을 위한 무리한 지휘는 없었는지 등에 관한 세밀한 진단 아래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이 신속히 마련돼 사명감 하나로 무모하게 불길 속을 뛰어드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거는 군인과 소방관들의 안전 또한 철저히 보장되고 존중돼야 할 것이다.

부하들을 생사의 현장에 투입하는 지휘관들의 지휘 책임 또한 생명을 담보할 만큼이나 막중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지휘 책임은 구체적인 감독의무가 인정돼야 하고, 예견했거나 예견할 수 있어야 하고, 이에 상응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법적인 책임만큼 증거에 의한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도의적·정치적 책임도 일정부분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이태원 참사, 해병 1사단 채 이병 순직사건 등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뒤끝이 시끄러운 이유도 지휘 책임을 명백히 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의 행안부장관, 채 이병 사건의 해병 1사단장 등의 여전한 건재는 하급 관련자의 사법 처리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서법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채 이병 사건은 국방부의 수사은폐 의혹으로 번져 국기를 흔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혹 이번 소방관 순직 사고시에도 지휘권이 적절히 행사되었는지에 대한 규명과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고인의 숭고한 영혼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예의일 것이다.

세간에는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소방관 안전 장비 확충에 투입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러한 정치혐오의 본질은 권력에 상응하는 지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일신의 영달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선량 후보자들은 국민을 위해 자신이 직접 불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숭고한 영혼의 소유자인가를 스스로 재량해 보아야 한다. 비록 계급은 소방교였지만 그 영혼의 계급은 소방 총감급이었던 두 소방관의 명복을 빈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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