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선행(先行)’은 정말 앞서나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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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선행(先行)’은 정말 앞서나가는 것일까?
  • 경상일보
  • 승인 2024.02.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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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아 울산 화진초등학교 교사

겨울방학이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시작될 즈음, 여기저기 붙어 있던 학원 홍보물들이 기억난다. 하나같이 ‘선행’을 큰 골자로 내세우며, 겨울방학 동안 필히 다음 학년 공부를 끝내야 한다며 학습자들과 학부모들을 유혹했다.

겨울방학도 끝나가는데, 모두 선행은 완벽하게 이루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방학을 보내는 ‘정도(正道)’일까.

앞으로 배울 내용들을 미리 배운다는 선행의 의미만 따지고 보면, 선행은 나쁠 게 없다. 공부를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배울 내용을 미리 익혀놓겠다는데 무엇이 잘못일까.

바로 복습 없는 ‘무분별한 선행’이 잘못이다. 특히, 주요 교과라 일컫는 국어, 수학 과목은 나선형 교육과정을 따른다. 나선형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인지발달에 맞춰, 가르치고자 하는 지식의 수준을 점점 높여가며 개념을 확장하고 심화시킨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 수학 교육과정에서 덧셈과 뺄셈을 배운 뒤 그 개념을 확장해, 2학년 때 곱셈과 나눗셈을 익히게 된다. 1학년 때 더하고 빼는 개념을 확실히 익히지 못하면, 2학년 때 수를 곱하고 나누는 것도 잘 할 수 없는 이치다.

현재 학습을 확실히 매듭짓지 못하면 다음 학습 역시 흐지부지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1학년 때는 학업성취도가 낮았으니 1학년 내용은 버리고, 얼른 2학년 내용을 배워 2학년 땐 학업성취도를 올려야겠다’라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다음 학년 학업 성취를 더 올리고 싶다면, 지금 현 학년, 현 학기 또는 그것도 어렵다면 이전 학년, 이전 학기 내용을 다시 복습하는 것이 시급하다.

방학 동안엔 학교 교과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며 교과서 문제를 찬찬히 풀어보자. 특히 수학은 교과서 이해가 우선이다. 교과서에서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나 문제는 오답 노트를 만들어 반복해 풀어보도록 하자. 핵심 개념은 마인드맵이나 표로 내용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심화 문제를 풀거나 관련된 도서를 읽으며 개념 이해를 보충하자. 역시나 선행이 끼어들 틈은 없다.

다음 학기 공부를 미리 하는 것보다 현 교육과정 심화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앞으로 배울 내용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 선행을 정말 하고 싶다면, 이 모든 활동이 끝난 뒤에 하자. 선행은 복습이 탄탄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선행을 한다고 해서 누구나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다. 영재가 아니고선 대부분에게 선행이 독으로 작용할 것이고, 언젠가 쉽게 무너질 부실 공사가 될 것이다(영재는 정말이지, 아주 소수라는 걸 명심하자). 내 수준을 정확히 인지하고 현재를 탄탄하게 마무리짓는 복습이 없다면, 선행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이고 허세일 뿐이다.

공부는 50m 달리기가 아니잖은가. 빨리 출발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사람은 종착점에 들어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주춤거려 보일지라도, 내 수준에 맞춰 제대로 발을 땅에 딛는 것이 ‘공부의 정도’라는 걸 잊지 말자.

김보아 울산 화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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